[취재] 대선후보의 검찰 개혁 공약

“우리 제발 정의나 자존심 따위 버리자. 촌스럽게 왜 그러냐?” 올해 초 개봉해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더킹>의 주인공인 검사 ‘한강식’의 대사다. 극 중 한강식은 겉으론 모든 검사의 존경을 받는 ‘스타검사’지만 실상은 정관계 인사들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권력의 숨은 설계자다. <더킹>뿐만 아니라 <부당거래> <검사외전> 등 고위직 검사들의 부정부패를 다루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계에서 유난히 ‘비리 검찰’이라는 소재가 흥행하는 이유는 검찰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관예우, 스폰서 검사 등의 사건은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으며, 2016년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살수차 직사 살수 의혹, KBS 보도 통제 의혹 등 정권비판적 사안에 대해 무디게 수사를 진행해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로 밝혀진 내용은 과거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미리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이에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찰 수사권 분리’ 등이 공약으로 제시되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 검찰 비리, 근본적 원인은?

◇검사는 ‘기소’의 독점적 담당자=대한민국 검찰의 권력은 특정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청구하는 행위인 ‘기소’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기소에 대한 권한을 검사만이 담당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할지, 그리고 기소를 유지할지 여부에 대해 검사의 재량을 인정하는 ‘기소편의주의’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범법자를 처벌하기 위해 재판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검사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범죄혐의가 입증돼도 가해자의 기존 전과나 피해 정도 등을 검사가 판단해 기소하지 않는 ‘기소유예’가 인정된다. 이런 독점적 권한 때문에 검찰이 은폐를 원하는 사건에 대해 수사 종결을 선언하거나 기소하지 않음으로써 묻어버리는 ‘비리’가 가능해진다. 2010년 진경준 전 검사장이 처남 명의의 회사가 일감을 몰아받는 대가로 한진해운 탈세 혐의에 대한 내사를 종결하고 기소하지 않은 사건은 기소독점권의 폐해를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다.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기소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검사의 재량에 달려있으므로 정·재계 인사들이 검사와 개인적 친분을 만들려 하고, 이것이 ‘스폰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기소를 둘러싼 검사의 막대한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검찰 내부의 감사기구인 감찰부와 예외적인 사건의 수사를 위해 조직되는 특임검사제도는 현직 검사로 구성돼 있어 같은 검사를 대상으로 내실 있는 수사를 진행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태훈 교수는 “감찰관을 외부에서 충원하려 하지만 외부인은 내부 사정을 잘 몰라 결국 내부인이 임명된다”며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검사의 비리를 관장하는 내부 기구 말고도 기소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이후 시민들이 기소와 불기소 처분을 심의하는 ‘검찰시민위원회’가 도입됐다. 하지만 검찰시민위원회의 심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위원회가 심의한 사건 가운데 최종 결론이 검사의 의견과 다른 경우는 3.7%에 불과해 그 존재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검찰에 고소한 사건이 기소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처벌을 신청하는 ‘재정신청’이 존재하지만 운영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검사가 범죄 사실이 명백한 사안을 자의적으로 기소하지 않는 것을 제한하는 재정신청 제도에 따라 검사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기소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8만여 건에 달하는 최근 5년의 재정신청 건수 중 기소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1%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제도가 내실있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기소권을 둘러싼 검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행정 조직=행정부 소속으로 편성된 검찰 조직의 특성상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또한 고질적인 검찰 비리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의 산하기관이며, 직제 상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한다. 현행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행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개별검사가 아닌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고 명시하지만, 검찰총장이 검사에게 감독권을 행사하는 현 구조에서 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김상겸 교수(동국대 법무대학원)는 “원래 법무부 장관이 권력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지만,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법무부 장관이 행정사무가 아닌 검찰권에 대해 지휘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검찰 조직의 실질적인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검찰은 개인의 양심과 소신보다는 정치권력에 취약해지기 쉽다.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수행하며,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한 검찰청법 제34조 1항에 따라 검찰 조직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김상겸 교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검찰인사위원회’ 등이 존재하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법률에는 법무부장관의 제청도 중요하다고 적시하긴 하지만 결국 대통령이 검찰조직에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하태훈 교수는 “모든 군인의 꿈은 별을 다는 것이며 모든 검사의 꿈은 검사장이 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인사권을 가졌기 때문에 검사들은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검찰 개혁 공약, 어디까지 알고 있니?

1.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현재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검찰 개혁 방안은 고위공직자가 개입된 사안을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것으로, 제19대 대선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이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 이래로 공수처 설립 움직임은 20년간 이어졌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발의된 공수처 관련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지난해 8월 공동 발의했으며, 이에 따르면 공수처는 독립된 기구로 국회 재적의원 10분의 1 이상이 수사를 요청할 때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추천위원회가 단수 추천한 후보가 국회 인사 청문을 거쳐 공수처장으로 임명되며, 공수처의 구성원은 검찰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검사직에서 퇴직 후 1년이 지나야 임용될 수 있다. 또 공수처 내부에 ‘불기소심사위원회’를 둬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하태훈 교수는 “공수처는 임명권자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수사 조직”이라며 “공수처는 일종의 상설 특검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효율성? 옥상옥 vs 옥외옥=공수처의 설립에 대한 찬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요즘, 반대측은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며 공수처의 효율성을 지적한다. ‘특별검사법’과 대통령 측근에 대해서 상시적으로 감찰할 수 있는 ‘특별감찰관’과 같은 제도적 보장책이 마련된 와중에 공수처까지 설립하는 것은 권력기관의 총량만 증가시키는 사족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같은 사건을 수사하는 기관이 둘로 늘어나면, 수사 기준이 달라 검찰과 공수처 간 수사의 차별성이 생길 수 있으며 수사 결과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모호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노명선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과장급 이하의 뇌물 사건 등을 검찰에서 조사하다가 장·차관급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 공수처로 넘어간다”며 “책임을 서로에게 넘기며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핑퐁게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찬성측은 공수처가 수사대상자와 적용범죄의 범위를 특정해 선별된 사안만을 다루는 조직이라고 반박한다. 하태훈 교수는 “특별법이 적용되면 일반법이 배척되는 특별법-일반법 관계를 공수처-검찰에 적용할 수 있다”며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법률적 보조장치를 마련해 유연히 대처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수처와 검찰은 수직이 아닌 병렬구조”라며 “공수처는 검찰 위가 아니라 밖에서 검찰권을 상호견제하는 옥외옥(屋外屋)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기존 검찰보다 정치권력에 취약하다?=국회의원의 10분의 1 이상이 연서명하면 수사에 착수해야 하고, 공수처장의 국회 출석이 의무화된다는 점에서 공수처가 국회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상겸 교수는 “독립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국회가 공수처장 후보를 단수로 추천함으로써 공수처가 다수당의 사적 수사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며 “국회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수사기관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하태훈 교수는 “공수처장의 국회 출석 의무화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앞에서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함”이라며 “이는 오히려 국회와 공수처의 상호견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반박했다. 더불어 법안 상 공수처의 구성원은 대통령과 검찰 인사위원회의 입김이 적게 행사된 공수처장의 심의를 거치므로 검찰보다 정치적 영향을 적게 받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2.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경찰에 수사권을 이관하자는 수사구조 개편 공약도 문재인 후보 등 유력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96조에 따르면 경찰은 독자적으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즉, 수사의 주체는 검사이며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보조기관이라는 것이다. 경찰에게 단독수사권을 부여하자는 방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15대 대선 공약으로 처음 제시한 이후, 2004년 참여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협의회’를 출범시키는 등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매번 검찰과 경찰의 첨예한 대립이 벌어져 수사권 조정에 대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12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각각 경찰과 검찰이 나눠 맡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비대해진 검찰의 권력을 분해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인 만큼, 수사권을 온전히 경찰에게 양도해 검·경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수사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검사의 개입은 인권 보장 장치?=이에 몇몇 전문가들은 검사가 수사과정에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검찰이 수사를 지휘한다’는 조항은 수사의 적법성과 수사 대상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주장한다. 대검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약 99%의 형사 사건들이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로 처리됐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다시금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는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노명선 교수는 “수사는 기본적으로 기소를 전제로 하는 행위”라며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자문을 통해 인권적으로 부당한 수사를 제지하고 기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현 검찰 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숱한 부패와 인권침해로 입증됐다”고 말한 바 있다. 2004년부터 2014년 9월까지 검찰 조사 중 자살한 피의자는 106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보여주듯(「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검찰과 인권 보장은 실질적으로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경찰 권력 비대화의 우려=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할 경우 오히려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된다. 노명선 교수는 “수사권 분리를 말하기 전에 경찰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치안, 경호, 수사개시권을 모두 갖고 있는 경찰에 대한 제도적 보완 장치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의 임명권 또한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검찰 조직에서 지적되는 인사권 문제는 경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편 이에 대해 검찰의 기소권으로 경찰의 수사권 독점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경찰은 수사해도 기소할 수 없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 내역을 확인하고 기소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였는지 확인하며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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