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보다 값싼 목숨이라니
반도체 칩보다 값싼 목숨이라니
  • 권우용 기자
  • 승인 2017.04.16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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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 반올림 농성장을 다녀오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농성이 554일째 되던 지난 12일(수) 삼성 서초 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 이어말하기’와 간담회가 열렸다. 작년부터 이어진 이어말하기에선 삼성직업병 피해자나 시민단체 활동가가 노동과 안전 등을 주제로 발언해왔다. 이어말하기 뒤엔 농성장에 들른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의 반올림 활동을 소개하는 간담회가 이어졌다. 반도체 공장 근로자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참사를 겪고 난 뒤 어떤 과정을 거쳐 산재를 인정 받는지 반올림의 이어말하기와 간담회를 통해 들어봤다.

이어말하기에서 반올림 대표 황상기 씨(왼쪽)는 "국민과 노동자가 새로 들어서는 정부를 감시해 우리가 편안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반올림 활동가 권영은 씨(오른쪽)가 이어말하기 진행을 맡았다.

반도체 공장 내부 환경은 종종 ‘클린 룸’이라 불리는데, 이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중심으로 한 기준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3년간 근무한 반올림 활동가 전성호 씨는 “반도체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뛰어다니지 말라는 등 제품에 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교육은 끊임없이 받지만, 노동자 안전에 대해 의미 있는 교육은 딱 한 마디 ‘불이 나면 나와라’였다”고 증언했다.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도 자기가 받은 안전 교육은 선배가 ‘이거 할 때 조심해’라고 말한 것밖에 없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한혜경 씨는 안전 교육은 받은 적이 없었고 나무에 올라가서 ‘맴맴맴’ 하든지 물속에 들어가서 참고 나오지 말라는 식의 굴욕적인 극기 훈련만 받았다고 하셨다”며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혈에 코피 나는 게 일상이고, 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생리불순”이라고 말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직업병에 걸리는 근로자들은 유명무실한 역학조사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다. 2005년 백혈병 발병 후 2007년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이자 반올림 대표인 황상기 씨는 “우리 유미는 칸막이도 없고 환기도 잘 되지 않아 땀이 줄줄 나는 삼성 반도체 기흥 공장 3라인에서 21개월간 근무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황유미 씨의 백혈병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로 신청한 황상기 씨가 2007년 9월 역학조사 참관인으로 공장에 들어간 결과, 그사이에 칸막이와 환기 시설이 모두 설치돼 있었다.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서 역학조사를 하니 조사 결과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공장에서 사용된 화학약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영업비밀이라며 숨긴 채 백혈병과 반도체 공장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짤막한 내용을 그해 말 발표했다. 반올림이 이에 항의해 2008년 역학조사가 다시 실시됐지만 결과는 같았다. 황 씨는 “관계자한테 유미가 그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냐고 묻자, 유미는 사표를 쓰고 나갔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답이 왔다”며 “공장서 일하던 사람이 병에 걸려서 역학조사를 신청했는데, 죽은 사람을 빼놓고 엉터리 역학조사를 하면 도대체 역학조사를 왜 하는 것이냐”고 규탄했다.

결국 황 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불인정 판정을 받았고, 이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하라는 행정소송을 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에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해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삼성이 선임한 대형 로펌 변호사 6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황 씨는 “나라 기관에다 행정소송을 했는데 삼성이 와서 변호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며 “우리나라 정부 기관은 적극적으로 삼성 편을 든다”고 꼬집었다. 2011년 고(故) 황유미 씨의 백혈병은 서울행정법원에 의해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항소했다. 결과적으로는 2014년에 서울고등법원도 산재를 인정했다. 황상기 씨는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일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를 상대로 항소한다는 것은 스스로 근로복지공단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이 같은 이유로 황 씨는 근로복지공단이 기업 친화적 태도를 보이며 산재 보험의 취지에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작년 12월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사례 377건 중 산재 승인 건수는 8건에 그친다.

시간이 흘러 피해자와 삼성 사이의 제3의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가 2014년 발족됐고, 2015년 7월에는 조정권고안이 발표됐다. 그러나 조정안이 발표되자 삼성은 조정안을 거부했고 9월에는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으며, 2015년 10월 7일 자 제6차 조정회의 날에는 어떤 제안이나 질문에도 일관되게 ‘보류’라고 답했다. 황 씨는 “그것은 사실상 거부였다”며 “삼성하고 아무런 말을 못 해봤기 때문에 삼성이 밖으로 나와 반올림과 눈을 마주 보면서 얘기 한 번 해보자고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올림은 삼성이 대화를 통해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것이다.

농성장에서의 생활은 당연히 쉽지 않다. 강남역 대로 한복판 매연 때문에 하루 종일 농성장에 있으면 손톱이 새까매지고 목도 칼칼해진다. 겨울에는 침낭에 핫팩을 넣고 견디며, 여름에는 더운 공기가 나오는 선풍기로 아스팔트 지열을 겨우 견딘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24시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CCTV가 농성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니 행동이 제약되고 위축된다”며 “감시받는 것은 정말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반올림은 삼성의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도 견뎌야 했다고 밝혔다. ‘반올림이 피해자를 내쫓았다’는 내용의 거짓 기사 수백 개가 깔릴 때도 있었고, 삼성 측 보도자료만 지상파에 보도되는 일도 허다하다. 황상기 씨는 “삼성은 1년 광고비로 2조 8,000억을 쓴다”며 “언론을 삼성 광고회사로 만들어 국민의 눈과 귀를 다 가려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의 언론 플레이로 인한 상흔은 지금까지 남아있다”며 “그럴수록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대안 언론이나 SNS를 많이 찾게 되고, 반올림 농성장에 찾아오시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교대로 농성장을 지키며 반올림은 삼성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어말하기 마지막 패널을 맡은 황상기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름이 아무리 덥다고 한들, 겨울이 아무리 춥다고 한들 여기 있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노동자를 위해서 잘못된 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이 추위, 이 더위는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숨 쉬는 마지막 날까지 말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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