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말살한 ‘금서 공화국’

1979년 신군부 세력이 12ㆍ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면서 1981년 제5공화국이 시작됐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다양한 출판물의 제작[]배포로 이어졌고, 이에 문화공보부(문공부)는 1980년 8월 19일 전체 출판사의 23%에 이르는 617개 출판사를 등록 취소시켰다. 또 반정권적 목소리를 담았던 간행물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을 폐간시키고 문공부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출판이 허가되는 ‘납본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반체제 도서의 유통을 원천봉쇄하는 사전 검열수단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시영 부이사장은 “정권유지를 위한 무차별적 출판탄압으로 표현의 자유는 전혀 없었다”며 “그 당시를 금서 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제5공화국은 금서의 기준을 민주화를 희망하거나 자본주의를 적대시한 것, 공산주의에 편승해 노동투쟁을 선동한 것, 좌경 불온사상을 고취한 것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비판서, 마르크스주의와 변증법 철학서, 노동운동서, 민중과 소외계층을 주제로 한 문학서뿐만 아니라 제3세계 이론이나 한국 근 현대사와 경제를 다룬 책, 좌파사상이 담긴 교육서, 해방신학도서, 민족주의와 통일 운동 관련 도서도 모두 판매가 금지됐다.

정(正)의 단계에 내재해 있던 모순이 반(反)의 단계에서 표출돼 개선점을 찾고 결국 합(合)의 단계에 이른다는 헤겔의 변증법 논리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시정하려는 국민의 열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금서로 지정됐다.

▲ © 강동환 기자

신학도서로는 함세웅 신부가 쓴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분도출판사, 1984)등 소외된 집단과 민족은 탄압에 분노해야 하며 ‘정의가 신의 뜻’이라는 내용을 담은 해방신학 관련 책이 금서가 됐다. 

감춰져 왔던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다룬 서적들도 대부분 금서가 됐다. 당시 국민경제연구소 소장 박현채의 『한국경제구조론』(일월서각, 1986)과 같이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을 서술한 책은 정경유착과 차관경제 등 떳떳치 못한 과거를 드러내 정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청사, 1986)은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지속된 친일 보수세력과 진보적 민족주의자들 간의 갈등에서 전쟁의 기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전쟁의 원인이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남침’이라는 반공주의 개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무차별적으로 출판 탄압 “이것도 저것도 다 금서”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미 국방부 관리 신분으로 한국전쟁 당시 휴전회담에 배석하기도 했으나 이후 잇따른 독재정권에 환멸을 느껴 ‘반한인사’가 된 정경모의 『찢겨진 산하』(거름, 1986)도 현대사의 굴곡을 다룬 책이다.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김구, 그리고 광복군 장교출신으로 박정희 정권하에서 의문사한 장준하가 사후 세계에서 만나 민족사를 논한다는 가상 정담의 형식을 취하면서 해방 당시의 상황을 소개했다. 이 책은 건국 초기 추악한 정치사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금서가 됐다.

6ㆍ29 특별선언 기점으로 금서 일부 해제

또 순수학술 서적 가운데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헤게모니’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구축한 이탈리아의 사상가 그람시의 『옥중수고』(거름, 1986)는 이탈리아 공산당원이 썼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한편 1987년 6월 항쟁으로 궁지에 몰린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는 6ㆍ29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이를 기점으로 ‘출판자유화 조치’가 내려져 판금된 도서 650종 가운데 431종이 해제됐다. 풀빛출판사 나병식 대표는 “해금되지 않은 금서도 많았지만 6ㆍ29 특별선언은 당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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