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국내 최초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나는 뮤지컬’

“오늘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우리 공연은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오늘 오신 여러분 큰일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도 오늘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어.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곤란해지는 뮤지컬.”

매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인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 지난달 14일(금)부터 이번 달 1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렸다. 김태형 연출이 이끄는 어드벤쳐 극단 ‘죽이되든 밥이되든’이 꾸미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에선 연출, 배우, 관객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죽이되든 밥이되든’의 다섯 배우와 연출은 극의 초반 5분 동안 관객이 던져주는 주인공, 시작 장소, 제목 등의 키워드를 칠판에 적는다. 이렇게 방금 만들어진 극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배우들은 그날의 무대를 즉흥으로 만들어낸다. 김태형 연출은 국내 최초로 즉흥 뮤지컬을 시도한 계기에 대해 “‘내가 본 그 무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공연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즉흥적인 대사와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단 공연의 막이 오르면, “에로!” “공포!” “코믹!” “소장르는 뭘로 해볼까요?”라는 연출의 막연한 질문에 관객석 곳곳에서 답을 던지기 시작한다. 기자가 관람한 날, 뮤지컬 소장르는 코믹, 명대사는 ‘누굽니까’로 결정됐다. “아! 그건 너무 어렵다.” “좀 더 특별한 거 없을까요?” “좋은데요? 그럼 오늘은 그렇게 가볼까요?” 배우, 연출, 관객이 머리를 맞대고 오늘 공연 계획을 짜고 난 후, 연출의 “해보자!”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돌쇠’ 주연의 ‘방앗간의 백분 토론’이 시작됐다. 100여 명의 관객들이 던지는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18살의 주인공 돌쇠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인 다중인격 도굴꾼이다. 전혀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배우들은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즉흥연기와 순발력으로 소화해낸다. 상대 배우가 어떤 말을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극을 이어나간다. 중간중간 극에 개입하는 연출은 배우에게 “당황하지 마. 할 수 있어. 침착하게 하나 둘 셋!”이라고 외치며 배우들을 독려한다.

즉흥 ‘뮤지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은 3~6개 정도의 솔로곡과 합창곡을 준비해놓고 극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 상태 등에 맞게 골라 부른다. 극 중간 애드리브 대사를 마친 배우가 무대 한 켠의 음악 감독과 음향담당자에게 “4번 갈게요”라고 외치자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곡조는 미리 정해져 있지만 주인공에 의해 날마다 가사가 달라진다. 이렇게 노래를 통해 극의 감정선은 점차 고조되고 결국 돌쇠는 스님과 전도사의 도움으로 ‘개성 넘치는 세상을 혐오하는’ 악당 ‘산타 클라스’와 ‘썰렁한 개그를 일삼아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는’ 또 다른 악당 ‘산타 클로즈’를 물리친다. 극은 돌쇠가 자신의 인격을 나눠준 후 개성을 찾게 된 산타 클라스와 평범한 사랑에 빠지는 파격적인 결말로 끝을 맺었다. 대사 하나하나 뜯어보면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아무 말 대잔치’지만 모두가 즐거운 대잔치임은 틀림없었다.

즉흥적으로 이야기가 결정되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이 닮아있다. 방금 관객이 제안한 인물을 준비할 시간 없이 연기해야 하기에 한 배우가 1인 3역이 되기도 하고, 같은 대사를 반복하기도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기도 한다.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이지만 어떻게든 무대를 완성해보려고 애쓰는 배우들의 모습에 관객은 박수로 용기를 북돋아 주거나 함께 고민하며 상황을 풀어간다. 극은 시작되면 어떻게든 끝이 나야 하고, 인생도 그렇다. 관객 모두 극 중의 주인공처럼 예기치 못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좌절하지만,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간다. 김태형 연출은 “날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은 준비된 대본이 없는 즉흥극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고 공연이 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만드는 즉흥 공연도 어떤 부분은 이상하거나 재미없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엔딩까지 완성을 한다”고 설명한 그는 “여러분의 인생이 조금은 비뚤어져 있고 잘못 나가고 있는 것 같아도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을 4번째 보러왔다는 김시연 씨(주부, 33)는 “이 뮤지컬은 아등바등 애쓰는 내 인생과 닮아있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정이 간다”며 “뮤지컬을 보며 ‘힐링’을 받는다”라고 웃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은 이번 뮤지컬을 통해 관객들과 호흡하며 한 달간 약 40개의 무대를 꾸몄다. ‘축구공’ 주연의 ‘오다 지침’, ‘단군’ 주연의 ‘그리스 대구 신화’, ‘황사’ 주연의 ‘먼지가 되어’ 등 각양각색의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들로 칠판을 빼곡하게 채웠고 14일을 끝으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막을 내렸다. 당신의 하루가 죽인들, 밥인들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즐겁게 만들었으면 됐고, 맛있게 먹으면 됐다. 오늘 오신 여러분의 인생 어쩌면, 오늘 만든 이야기처럼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와 이 자리에서 모여, 바로바로 여기서 만들어내지. 좀 이상하면 어때. 좀 황당하면 어때. 오늘 공연보다 더 찬란히 빛나게 될,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이라는 극 후반부의 노래가사처럼 단 한 번뿐일 당신의 오늘을 응원한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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