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학술행사
트랜스휴먼, 상상을 넘어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다| 학술회의 | 트랜스휴머니즘과 미래 일본사회
  • 조정빈 기자
  • 승인 2017.05.14 06:47
  • 수정 2017.12.10 01:38
  • 댓글 0

2016년 3월, 전 세계를 휩쓴 키워드는 ‘인공지능’이었다. 5회에 걸친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은 그간 공상과학소설과 영화의 소재로만 이용되던 인공지능이 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대중에게 환기하며 다양한 반응을 끌어냈다. 인공지능의 순기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인간 육체의 한계를 극복할 길이 열렸다고 환영하는 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것을 경계하는 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남으로써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일 일본연구소 주최로 열린 ‘일본비평 17호 특집 학술회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트랜스휴머니즘과 미래 일본사회’라는 색다른 주제를 택해 눈길을 끌었다. 로봇산업의 강국이자 공상과학 장르의 선두주자인 일본이 포스트휴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책임편집자인 이지형 교수(숙명여대 일본학과)는 회의 서두에 일본이라는 특수 영역을 매개로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인 영역을 다루고자 했다는 취지를 밝혔다.

트랜스휴먼이 뭐길래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1999년 닉 보스트롬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개념으로 과학과 기술이 연관된 제반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신상규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앞으로 인간의 능력이 기술을 통해 지속해서 향상 또는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인간 향상’은 기술을 이용해 지적, 정서적,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향상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인간 자체의 향상과는 다르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생명보수주의자들은 인간 향상 논쟁의 전선에서 대립하고 있으며,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 향상을 긍정하는 쪽이다.

아직 연구자 간에 ‘포스트휴먼’(Post-human)과 ‘트랜스휴먼’(Transhuman)의 범위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이날 진행된 4개의 발표에서는 이 두 개념이 혼용됐다. 질의응답 때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이 뭐가 다른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신 교수는 포스트휴먼은 능력의 향상을 경험한 생물학적 인간부터 완전히 인위적인 인공지능까지 포괄하는 기술적인 개념이고, 트랜스휴먼은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한 인간으로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를 긍정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트랜스휴먼을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중간단계가 아니라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한 연구자도 있었다. 전치형 교수(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트랜스휴먼의 예로 포함했다. 트랜스휴먼은 이전까지 없었던 존재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를 매우 낯설게 여긴다. 전 교수는 트랜스휴먼이 전시나 경기 같은 행사에서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이질감을 극복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2016년 3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알파고는 분명한 형체가 없는 인공지능이다. 해당 호텔에도 알파고는 존재하지 않고 알파고를 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 호텔에는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가지 못한 사람들은 대국 생중계나 기자들의 속보를 실시간으로 접했다. 이 과정에서 알파고의 존재를 안다고 믿지만 정작 알파고를 본 적은 없는 ‘가상의 목격자’들이 만들어졌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대규모 이벤트로 취급됐고 이를 통해 대중은 새로운 단계의 트랜스휴먼인 알파고를 큰 괴리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전 교수는 이처럼 트랜스휴먼이 행사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혐오나 불안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단계가 트랜스휴먼의 종착점인지 중간지점인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상규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는 이날 발표에서 "인간 향상 기술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인간 향상 기술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꽃핀 포스트휴먼적 상상력

로봇산업 강국답게 일본에서는 인간의 겉모습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여럿 개발됐다. 세계 최초로 이족보행에 성공한 로봇이라며 각종 매체에서 유명세를 치른 아시모 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휴머노이드들이 공개됐다. 이강원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재난학연구소)는 이를 두고 “사람같이 되기 위한 로봇의 도전”이라 표현했다. 일본 연구진들의 최종목표는 모습은 물론 행동이나 제스처가 인간과 같고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처럼 반응하는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감응은 상호 간에 무의식적으로 어떤 느낌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 능력이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일본의 안드로이드는 사람과의 감응을 통해 감성을 체화하는 것을 지향한다”며 일본의 안드로이드가 알파고 같은 ‘머리로부터의 인공지능’이 아니라 ‘몸으로부터의 인공지능’이라는 점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일본 SF 문학을 매개로 포스트휴먼 혹은 트랜스휴먼 시대에 인간이 진정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일찍이 일본 SF 문학계에서는 인공지능이 감정이나 판단력을 가지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을 문학적 상상력의 형태로 표현해왔다. 신하경 교수(숙명여대 일본학과)는 “일본 SF 문학에서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담론이 굉장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이러한 상상력을 전면적으로 보인 작가로 이토 케이카쿠를 꼽았다. 이토 케이카쿠의 SF 소설이 과학기술이 매우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됐을 때 현실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를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토 케이카쿠는 『하모니』에서 의료와 정보통신이 결합한 항상적 체내 감지 시스템인 ‘WatchMe’ 시스템이 보편화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이 예측 가능해지는 사회를 묘사했다. 신 교수는 이토 케이카쿠의 미래사회가 정부는 대부분의 기능을 잃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동주 HK연구교수(일본연구소)는 이러한 해석이 이분법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인간들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정부에 외주를 맡김으로써 자율성을 잃고 결국 정부가 모든 정보를 쥐고 통제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석했다. 미래사회에는 정부의 규율 권력은 유지되고 여기에 정보 권력이 결합한 것이지, 사람들의 행동이 정부의 규율이 아닌 환경에 의해서만 규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날 회의에서 발표된 내용은 오는 8월 15일 발간 예정인 『일본비평』 제17호에 실린다. 4개의 발표에서 트랜스휴머니즘에 기초한 포스트휴먼적 상상력이 공상과학 문학작품부터 안드로이드 개발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일본이 직면한 노령화 사회, 인구 절벽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높아진 환경에 대한 관심 등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미래주의적 담론은 대중에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지만, 각종 매체를 거쳐 모두의 삶에 스며들고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임소연 박사(과학사·과학철학협동과정)는 트랜스휴먼이 기계와 인간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극복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신하경 교수가 말했듯 “포스트휴먼의 논의는 인류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휴먼으로의 이행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트랜스휴먼 기술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조정빈 기자  partner327@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정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