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사회부장

한 청년의 죽음을 접했다. 청년이 고인이 된 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사과 한 마디 없이 뻔뻔했고, 고인의 동생은 이에 맞서 마지막 수단으로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담담히 그간의 일을 한 토막의 글에 담았다. 동생의 글을 통해 소식이 퍼지고 시민대책위가 만들어진 후에야 그들은 ‘근태불량’과 ‘개인의 나약함’을 운운하던 기존의 태도를 거두고 공적조사결과를 수용해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공적조사결과를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시민대책위의 자체조사결과에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청년을 ‘위로’하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던 그들은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청년들의 삶을 손쉽게 짓밟았으며 결국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올곧았기에 세상의 부조리를 견뎌낼 수 없었던 그 청년은 살기 위해 죽어야만 했다. 드라마 제작이라는 허울 하에 자행되는 온갖 핍박과 멸시 속에서도 청년이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건 제 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기형적인 착취와 해고가 일상화된 그곳에서 청년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과중한 업무로 잠도 자지 못하고 벌어낸 월급을 쪼개가며 사회의 어두운 면면에 힘을 보태기도 했지만, 청년은 자신을 옥죄어오는 마음의 짐을 덜어놓지 못했다. 비겁한 사회의 ‘상식’을 거스르고 진정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했던 이 청년은 불과 몇년 전 관악을 떠나 tvN에 입사해 사회로의 발걸음을 내딛었던 우리의 선배 이한빛이다.

매일같이 지나는 사회대 복도에서, 친한 후배가 활동하는 동아리 ‘골패’에서, 그가 몸담았던 학생사회의 모습에서, 교내 대학문학상 수상작에서, 학과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곳곳에 스며든 선배의 흔적을 마주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대학시절을 보내며 정의를 가슴에 품었고 사회로 나가 작게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상을 위로하고자 했던 그 선배는, 관악에서 공부하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차가운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한 선배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꿈꿨던 장밋빛 미래를 지워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 선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죽음이었다.

명문대 출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로 구조 속 최상위에 위치한 것만 같았던 선배에게도 현실은 똑같이 가혹하기만 했다. 드라마 제작의 현장에서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노동착취는 ‘정상’으로 취급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처럼 여겨졌으며, 하급자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은 예삿일이었다. 가장 약한 말단에 희생과 책임을 요구하고 정작 수뇌부는 보이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 중간에 일을 그만두면 패배자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는 선배의 말처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됐다. “원래 그렇다”는 말 속에 선배의 고통은 묵인됐고, 대학시절 배운 가치를 현실에서 지적하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비정상’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 모두는 비단 선배가 몸담았던 방송업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가 연대의 손길을 보냈던 KTX해고승무원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의 모습에서, 나아가 이 사회 곳곳에서 어느새 이는 자명한 작동원리가 돼버린 지 오래다.

“솔직히 예상 못했어요.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둥지를 틀면 운동을 저버리고 영달을 찾더라도 세상의 모순과 빗겨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죠.” 세상의 부조리를 벗어나기 위해 예술을 택한 선배이지만 ‘사람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방송업계도 이를 벗어날 순 없었다. 각자의 ‘감성’을 포기하고 사회가 규정하는 ‘이성’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래서 우리의 선배를 죽게 만들었던 이 비열한 구조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젊은 청년이 다시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 우리는 선배의 죽음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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