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빈 기자
학술부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 어느 날, 청소년을 위한 과학잡지에서 ‘아시모’와 ‘휴보’에 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로봇들은 인간처럼 열 손가락으로 물건을 쥐었고, 두 발로 걸어 다녔다. 심지어 느리지만 뒤뚱뒤뚱 뛰기도 했다. 왠지 모를 친근감과 호기심을 느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들을 다시 기억해낸 것은 ‘알파고’ 열풍 덕분이었다.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에 인공지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먼 미래에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공상과학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종종 보긴 했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줄로만 알았던 인공지능이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현실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였을까, 알파고의 출현은 나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기계인간이나 생체인식 같이 단순히 상상의 산물로만 여겼던 것들이 하나둘 현실이 돼 나타날 거라고 상상해보니 덜컥 두려워졌던 것이다. 이제껏 미래의 인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포스트휴먼’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트랜스휴먼’도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공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트랜스휴먼은 사이보그나 기계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일본연구소에서 주최한 일본비평 제17호 특집 학술회의를 취재하겠다고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개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이강원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재난학연구소)의 ‘일본 안드로이드(로봇)의 감성지능과 미적 매개’였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제시한 ‘섬뜩한 계곡’(Uncanny Valley) 개념이 이 발표에서 소개됐다. ‘섬뜩한 계곡’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어떤 존재를 볼 때, 사람과 비슷할수록 친근감을 느끼다가 너무 비슷해지면 시체나 좀비를 봤을 때처럼 갑자기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나타낸 그래프다. 그래서 모리 마사히로는 후대 로봇공학자들에게 인간과 어느 정도만 비슷한 휴머노이드까지만 만들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비슷하게 만들어라. 거기서 더 나아가면 사람들이 좀비처럼 느끼고 무서워할 뿐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머노이드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섬뜩한 계곡을 건너겠다고 선언하는 학자가 등장했다. 이시구로는 ‘확장된 계곡’ 모형을 만들었다. 그는 움직임과 모양새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원래 계곡(섬뜩함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구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히려 언덕(친밀감이 더욱 높아지는 구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모형이 등장함으로써 ‘섬뜩한 계곡’이 오히려 안드로이드 개발의 지향점이 됐다. 무조건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로봇공학자들의 꿈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섬뜩한 계곡’을 ‘건넌다’”니 이 얼마나 재밌는 표현인가. 그러나 이 표현은 앞으로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할 대중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트랜스휴먼 기술이 발달하겠지만, 이를 두려워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트랜스휴먼을 맞이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삽화: 강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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