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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문예창작동아리 ‘창문’

까마귀가 나는 밀밭 _ 안선희(국어국문학과 14)

허수아비는 나에게 차를 권했다

밀알이 찻물 표면에 원을 그리며 돌았다

혀끝과 입천장에 밀차가 들러붙었다

허수아비는 밭을 밟으며 산책했다

부러진 밀이 길에 문드러졌다

발목에 감기는 얼룩덜룩한 밀짚 위로

차를 뱉었다

혓바닥이 푹 익었다

허수아비가 배를 울리며 웃었다

나는 목매달린 것처럼 허수아비를 사랑했고

뜰에 까마귀가 날았다

미안(微眼) _ 권혁준(전기정보공학부 15)

능선을 따라 나에게 향하는 초록 숨결은 누구의 것인가요

한 번의 마주침에 한 개의 별

나는 너를 나의 곁에 앉혀서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생동하는 모든 것의 이유에 대해

너는 그저 미안하다고만 되뇌었지

그것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가지런한 손톱을 씻고 있어

하이얀 반달들이 물을 타고 가지런히

세상의 모든 고요함을 다 담은 듯이 흘러 나온다

속삭이듯이

빛을 방출하면서

차박 차박 안개 속에서 새초롬한 숲길 속에서 뽀얀 너가 걸어 나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탄생을 슬퍼하며 울어댈 때

너는 그저 미안하다고만 되뇌었지

그 작은 눈동자 속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가느다란 은색 실을 붙잡고 거닐며 도착한 곳에 있던

나를 바라본 웃는 표정의 너무도 슬픈

微眼

하늘이 보이는 곳에 누워 잠들고 싶다 _ 조준하 (국어국문학과 13)

꿈을 꾸었다

잘린 말풍선들이 쏟아지는

서로가 한껏 긴장해서 가위를 들고 선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굳은 표정들이 선명하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팔을 내려보고

떨리지 못하는 목울대만큼이나

두근대지 못하는 심장들을 보며

굳어가는 것들을 느끼면서

꿈에서 깨었다

아니

어디부터 하늘이었을까

먼 지평선

어지럽게 엉키고 턱 막히는 한숨들을 끝으로

하늘이 어두워진다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며

고여 막힌 벽으로 눈동자를 모은다

언젠가

다시 말들이 자라나

하늘을 떠받치고 설 수 있다면

그 사이로 또 말들이 자라나겠지

그땐

하늘이 보이는 곳에 누워 잠들 수 있을까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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