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

연예인의 다이어트 전후사진이 대중의 이목을 끄는 나라. ‘내가 이 옷이 마음에 드는지’보다 ‘이 옷을 입은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먼저인 나라.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를 쓰는 나라. 365일이 다이어트로 채워지는 나라. 그렇기에 날씬함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나라. 바로 한국이다. 외모지상주의는 한국을 표현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워놓은 ‘날씬함은 아름다움’이라는 등식을 깨고자 하는 이가 있다. 숫자로 정의되길 거부하는 그. 한국 최초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를 만나봤다.

사진제공: '66100'

한국에 다양성을 ‘플러스’하다

한국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어느 날 그는 모니터 속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의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홀린 듯이 오디션에 지원했다. 200:1의 경쟁률을 뚫고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였던 비키니 심사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원하는 마른 몸매라는 ‘합격기준’에 부합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돌려 자신 그 자체로 ‘합격기준’이 되는 곳을 찾아 나섰고, 그러던 중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개념을 알게 돼 도전을 결심했다. 세계 각국의 플러스 사이즈 에이전시에 자신의 프로필 사진과 자기소개서를 보내며 오디션을 준비하던 그는 미국 최대 규모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패션쇼인 FFF(Full Figure Fashion)위크에 발탁돼 2010년 당당히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데뷔했다.

김지양 씨가 당시 활동했던 미국과 한국의 패션계에는 온도차가 존재했다. 미국 패션계에서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활동이 활발했던 반면, 한국은 플러스 사이즈에 대한 개념조차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가장 작은 사이즈가 그에겐 너무 커서 패션쇼에 서지 못했던 일화는 한국과 미국의 대조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는 “미국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활성화돼있어 다양성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하고 자유롭다”며 “한국인들이 플러스 사이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의 측면에서 발전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결국 그가 삶을 꾸릴 곳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에이전시 계약은 마쳤으나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국행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모델 활동은 모든 여건이 ‘제로’인 상태였기에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당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설 수 있는 곳도 거의 없었기에 한국에선 모델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김지양 씨는 “한국에선 사람들이 흔히 예쁘다고 여기는 얼굴과 몸매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으면 예쁘지 않거나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누군가가 나를 고용하는 것’이 모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 중 하나이기에 ‘마름’이 미의 기준이 된 한국에서 모델 일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척박했던 당시의 한국에 ‘플러스 사이즈’의 씨앗을 점차 키워나갔다. 플러스 사이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패션잡지 발간, 플러스 사이즈 쇼핑몰 운영과 스타일링 특강,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길티 플레저’를 느끼는 대신 함께 맛있게 먹으며 힐링하자고 제안하는 ‘이노센트 플레저’ 캠페인 등을 진행하며 바쁘게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가치임을 강조해왔다. 김지양 씨는 “대량생산이 시작되며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는 계층의 몸매를 분석해 사이즈를 만들어 시작한 게 지금의 기성복”이라며 “기성복이 안 맞는다고 해서 내 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기성복을 예로 들며 아름다움의 상대성에 대해 설명했다.

사이즈는 사이즈일 뿐, 「66100」

김지양 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을 건네기 위해 모델로 서는 일을 넘어 2014년에 패션 잡지 「66100」을 창간했다. 「66100」은 사이즈와 아름다움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며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도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만능주의를 지양하고 사이즈와 상관없는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사이즈 너머의 무한함을 이야기한다’를 모토로 삼는 「66100」의 이름은 한국에서 기성복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여성의 66사이즈와 남성의 100사이즈를 의미한다. 그는 “누군가가 사회적 통념을 깨주길 기다리기엔 너무 답답했다”고 토로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작한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개 ‘패션잡지’하면 마른 모델들로 가득 차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66100」은 다르다.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정보, 인터뷰, 화보, 캠페인 문구 등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외모와 체형에 대한 차별, 편견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이들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66100」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면 한국인의 사회적 다양성과 존중에 대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66100」이 다른 패션잡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알 수 없는 미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김지양 씨는 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이에 따라 행동해왔다. 모델도, 잡지도, 강연도 모두 마음이 시킨 일이었다. 최근 그가 ‘페밋 페스티벌’에서 부스를 운영한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플러스 사이즈에 관련된 활동들과 페미니즘이 맞닿아 있긴 하지만, 무엇을 하고 나니 그것이 페미니즘 운동이었을 뿐, 페미니즘을 위한 활동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즉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것은 사회적 다양성이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해 마음이 가는 대로 일을 할 것”이라며 “계획한 대로가 아니라 말하는 대로 모든 게 되고, 말을 하면 언젠간 이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지양 씨는 한국의 척박한 풍토에서 홀로 활동하며 많은 어려움을 직면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는 “「66100」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때마다 편집 디자인, 인터뷰 대상자 섭외, 촬영협조, 협찬 등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만들어갔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구든지 내가 하는 일의 목표나 활동을 지지한다면,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함께 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지양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누구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 자존감을 지키는 것.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뜻을 굽히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 김지양 씨는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그리고 꼭 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 「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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