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경 강사
법학전문대학원

며칠 전 치러진 대통령 선거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사건들은 안티고네의 비극이나 카프카의 기묘한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도대체 법이 뭐길래?”라는 난감한 물음을 던져줬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경 우리의 눈과 귀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에게 쏠려 있었다. 재판관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는 지난 정권에 대한 준엄한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와 국정 농단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참담함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게 됐던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법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조카 녀석마저도 특별법이니 헌법재판소니 하는 말을 툭툭 내뱉는 것을 보면 법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얼마나 크게 확대됐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삶의 비극성이야말로 우리 삶에 법을 부착시키는 아교란 말인가? 물론 분쟁이나 범죄처럼 부정적 사건들이 법이 해결해야 하는 일차적 문제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삶의 어두운 면만이 법의 주무대는 아니다. 실제로 법은 마치 공기와 물처럼 우리 삶에 필수적이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기 전까진 그 존재가 잊힐 뿐이다. 하지만 법은 인류의 보편성과 개인의 개별성을 함께 품고 사는 우리의 삶을 덮고 있는 촘촘한 그물망과 같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는 일상적 과정에도 수많은 법규와 계약 관계가 얽혀 있듯이 법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편재한다.

시민으로서의 삶을 일궈가기 위해선 법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법을 따지는 사람을 꺼리는 풍토는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 이는 법을 단순히 이전투구의 도구나 제재의 올가미로 여기는 그릇된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은 ‘삶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이상과 가치 그리고 열망을 품은 개인들이 사회를 이루고 공동생활을 꾸려 나가는 데는 규율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때 법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일률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을 규율의 기준으로 삼기보단 구성원 각자가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삶의 형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아낄 수 있을까? 나아가 그런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법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법을 알아야 한다는 소극적 요청이 아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선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적극적 요청인 것이다.

그런데 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민으로서의 교양을 갖춘다는 것은 단순히 법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여기엔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한 신입생이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친구가 정말로 예뻐서 예쁘다고 칭찬한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 소박한 질문엔 사회 통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나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지난해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단톡방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그 학생들이 잠깐만이라도 자신들의 ‘톡’이 누군가의 인격을 ‘툭’ 끊어 버리는 칼날이 되진 않을까 고민해 봤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학교 안에서 시민의 교양인 법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학부 강좌들이 점점 줄고 있는 상황은 매우 아쉽다. 로스쿨 제도가 들어선 지 10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서의 법학 교육은 철저하게 법률 직업인 양성에 집중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법학 교육은 법률가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엘리트 체육 정책이 우리 체육 현실을 ‘즐기는 체육’이 아닌 ‘보여주는 체육’으로 전락시킨 전철을 법학계가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교양으로서의 법학 교육을 위한 대학 교육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학생들 스스로가 가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라도 법을 이해했으면 하는 다소 지나친(?) 바람을 가져 본다.

강태경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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