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징계 탄압을 중단하고 학생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지난 20일, 몇몇 학생들의 집에 징계혐의고지서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학생처장이었다. 고지서에는 해당 학생들이 징계대상자로 선정된 이유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본부 점거 농성에 참여하거나 총장의 4.19 헌화 행사에서 항의 피켓팅을 한 것, 총장 공관 앞에서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던 것, 학사위원회에 항의 방문을 했던 것 등 사유는 다양했다. 작년 10월부터 학생들이 벌여온 투쟁 하나 하나가 ‘징계 혐의’가 돼 돌아왔다.

불과 지난주 월요일, 학생사회 대표자들은 총장을 만나 징계 절차를 유보하고 대화를 시작하자는 공식적인 제안을 했다. 학생들은 학교와 학생 간의 대화테이블을 구성해 현 사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당면한 상황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사가 있으나, 학교 당국이 징계라는 칼을 내려놓지 않는 한 제대로 된 학교-학생 간 대화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학교와 학생 사이의 권력차는 실로 엄청나고, 대화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러한 권력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학생사회 대표자들 역시 이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대화를 시작하자는 제안 자체도 학생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그런데 하물며 학교와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가 추진되고 있다면, 학생들은 학교와 만나 제대로 된 주장도 해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줘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측에 징계 절차 진행을 유보하고 대화를 시작해 사태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총장은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책임지고 징계를 유보해보겠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자들은 이를 믿고 곧바로 학생 측의 요구안을 설정해 학교와의 대화에 나서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며칠 뒤 돌아온 것은 징계혐의고지서였다. 어렵게 성사시킨 첫 대화 자리에서의 약속조차 학교 측이 먼저 어긴 것이다. 학생처장이 발송했다는 고지서를 보며, 농성 중인 학생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학교 측에 의해 고발당한 학생들은 징계와 동시에 형사처벌 위협까지 받고 있다. 네 명의 학생들이 벌써 ‘불법 점거 농성’ 혐의에 대한 조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로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세간에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학교 측이 여러 명의 학생들에 대해 제명(재입학이 불가하고 학적이 말소되는 영구퇴학조치) 수준의 높은 징계를 내릴 방침이라고 한다. 언론사 기자들과 많은 교수님들이 먼저 이 소식을 듣고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걱정 섞인 위로를 건넨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학교는 1999년 이후로 단 한 명의 학생에게도 학사 상의 이유가 아닌 징계 제명 조치를 내린 바가 없다. 같은 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학생, 시험에서 노골적 부정행위를 한 학생, 심지어 학내 시위 도중 청원 경찰을 폭행해 전치 4주의 치아 부상을 입혔던 학생에게도 영구 퇴학 조치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본부 점거 농성을 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교가 손쉽게 수 명의 제명 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학교 당국의 권력에 도전하고 잘못된 교육정책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사상 초유의 징계를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 학교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징계 조치는 학교에 맞서 싸운 학생들을 쫓아내고, 이로써 두려움을 조장해 학생들의 잠재적 저항을 막고 우리를 길들이기 위한 공포 정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정 학교가 교육적인 이유로 징계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면, 왜 다른 이유도 아니고 정치적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영구 퇴학을 거론하고 있는 것인가?

작금의 서울대에서는 노동이, 교육이, 민주주의가 그 숭고한 이름을 잃고 땅에 떨어져 위협받고 있다. 점거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 의해 수 차례의 폭행을 당했다. 그 농성은 교육의 상품화와 부동산 투기자본에 기댄 무분별한 팽창을 중단하라는 정당한 싸움이었다. 학생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올바른 주장을 굽힐 줄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학교가 이 학생들을 영원히 퇴학시키겠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 편에서는 학교 측과 임금 등 고용조건에 대한 교섭을 하던 중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36명의 노동자들을 포함한 비학생조교들이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학교 곳곳에 내걸렸다. 이를 보며 저항하는 자들에 대한 탄압은 이미 이 대학의 운영원리로 뼛속깊이 스며들었음을 깨달았다. 학생은 제명하고 노동자는 해고하는 학교라니, 마음이 착잡했다.

작금의 서울대에서 투쟁은 일상이 됐고, 우리는 투쟁하지 않으면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대학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투쟁은 일상적으로 폭력에 의해, 징계 탄압에 의해, 형사고발 위협에 의해, 해고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나는 더 할 말이 많지 않다. 이 학교가 진정 교육기관을 자임한다면, 학교 당국은 최소한 작금의 잔악한 탄압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학생들이 제안한 대화를 거부하고 징계와 고발 탄압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사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학교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길이다. 학교 측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한다.

윤민정
전 본부점거본부장
현 외교/나침반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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