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실태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했다. 그런데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같은 모순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변의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은 회사의 지시와 감독 하에 근무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사용자와 맺은 계약에 따라 활동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불리며, 전국적으로 그 수는 무려 23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엄연한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정작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살펴보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한지 점검해보고자 한다.

가려진 ‘노동자성’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노동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또 여러 차례의 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노무 제공과 임금 지급의 실질적인 관계가 종속적이어야 한다는 ‘사용종속관계’가 있어야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는 위의 사용종속관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여겨져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야쿠르트 판매원이 연차수당을 비롯한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들의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롭고, 업무수행에 있어서 사업주의 지휘 및 감독이 상대적으로 정도가 낮으며 급여 대신 수수료를 지급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류가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제적인 노동 현실을 고려하기보다는 형식적인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는 우리 노동시장에서 전통적인 방식과 기준만으로 노동자성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2006년 우리나라 정부에 “고용관계 존재 판단은 사실 우선의 원칙에 따라 노동의 수행이나 보수 지급과 관련된 사실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즉, 형식적인 계약관계보다는 실질적인 노무 제공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보험설계사의 업무는 형식적으로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설계사 교육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거의 매일 회사에 9시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보다는 노동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노동법 사각지대가 낳은 부조리한 노동환경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비정상적인 노동형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화하려는 기조 하에 확대돼왔다. 민주노총 법률원장 권두섭 변호사는 “사용자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계약을 맺어 노동법에서 배제한다”며 “간접적인 형태의 고용이므로 4대 보험이나 퇴직금과 같은 추가지출 및 사용자로서의 여러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 역시 “상시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일자리에 대한 사용자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고용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사용자의 지휘감독 방법도 이전보다 간접적이고 포괄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우리의 법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법상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법상의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초과근로에 대한 연장수당이나 유급휴가, 퇴직금 등의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미래에셋생명보험지부 손준달 지부장은 “보험설계사들은 실적에 따른 수당 외엔 초과근로수당이나 유급휴가는 물론, 고객과의 미팅을 위한 출장 시의 교통비나 식비 등 업무에 필요한 실비마저도 회사로부터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산재 및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에도 의무적으로 가입되지 않아 근무 중 재해에도 무방비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법률원장 권두섭 변호사는 “일하다가 다쳐도 모두 개인 책임이라 화물 운송 노동자는 교통사고가 나면 파산할 수밖에 없고 가족 전체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정난숙 사무처장 역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정규직 직원들과 거의 똑같은 일을 함에도 정규직 직원에게 보장되는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급여도 정규직 직원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했다.

더욱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남신 소장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더라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야 한다”며 “사용자와의 교섭 등 노조로서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업무 중 피해를 당하더라도 강력한 노조가 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반면, 특수고용노동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피해를 홀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는 회사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면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에 비교해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손준달 지부장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회사에서 온갖 불이익을 주면서 노조 설립을 방해한다”며 회사와의 재계약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노조 활동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무관심 속 외면받는 그들의 목소리

이러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비정상적 노동 형태는 지난 십여 년간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으나, 아직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에는 우선 노조 활동을 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이정미 의원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삼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불공정한 근로조건을 강요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를 전달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두섭 변호사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해 단결권을 행사한다면 현행법상으론 개인사업자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노조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한계 이외에도 일부 기존 정규직 노조의 비협조적인 태도 역시 특수고용노동자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남신 소장은 “1차적인 책임은 사용자와 잘못된 사회 제도에 있지만, 조직노동 세력도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현대기아자동차 대리점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판매연대’ 노조를 결성하고 금속노조에 가입을 신청했지만, 정규직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정규직 노조가 가입을 가로막은 사례도 있다.

실제 일은 정규직과 비슷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등 사용자들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령 학습지 교사의 경우 과거에는 위탁교사의 사무실 출근 규정과 업무일지 작성 관행이 존재했지만, 현재 없어진 상태다. 보험설계사 역시 과거 보험사와 위탁계약을 맺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엔 보험사 측 요구에 따라 사업자등록 후 1인 대리점 방식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와 보험설계사 사이의 사용종속관계가 형식적으로 모호해지면서 노동자로 인정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손준달 지부장은 “과거처럼 사무실 출근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수당 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직원포상과 같이 출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불이익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매일 출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난숙 사무처장 역시 “개인사업자로 위장시켜놓고 일은 정규직 직원들과 똑같이 시킨다”고 말했다.

정부와 같은 제도권이 특수고용노동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점 또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남신 소장은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는 “특수고용직 대부분은 보험사나 학습지 회사 등 그 사용자들이 재벌 대기업과 연관돼 이들의 영향력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예비후보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4대 보험 및 노동삼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으며, 이정미 의원은 ‘노동자’ 정의조항에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정미 의원은 “노동자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헌법상 보장된 노동삼권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만들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노조법 개정안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며 특수고용노동자의 사회적 권리와 소득향상을 위해선 제도뿐만 아니라 약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의 노동자 및 전문가들 또한 가장 근본적이면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그 이전에라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단계적인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난숙 사무처장은 “노동자로 인정받기에 앞서 우선 특수고용노동자도 노조를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두섭 변호사 역시 “가장 우선적으로는 노조를 할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써 사용자와 교섭 및 협약을 체결해 다양한 현안을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치권에도 “20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우선 과제로 삼고 고민해야 하며, 각 당의 대선후보들 역시 당선 이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에 대해 설립허가증을 교부하겠다고 공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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