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논란을 파헤치다

2013년 8월 12일,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선 한 권의 책이 출판됐다.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의 『제국의 위안부』였다. 출판사는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그러나 “‘강제연행’ 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는 행해진 바 없다”와 같은 표현이 문제가 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9인은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서 손해배상청구, 명예훼손 등을 골자로 한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학술서를 표방했지만 국사학계에서는 그 학문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오히려 국사학계 밖에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더 큰 논쟁이 불거졌다. 더불어 명예훼손에 관한 법(형법제307조)이 집단에 대해서는 성립하기 힘들고 사실적시와 의견표명 사이의 구분 역시 모호하다는 점이 허점으로 지적됐다.

『제국의 위안부』, 무슨 내용일까?

『제국의 위안부』는 제목과 달리 ‘위안부’ 개념 자체보다는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의 허점을 지적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가령 일본군에게는 제도를 발상하고 수요를 만들어낸 책임이 있지만 사기성 모집은 일본군의 의도가 아니라 업자들의 일탈이었으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도의적 책임만 질 뿐 ‘국가범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또 저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나 나눔의 집 같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의 운동이 보편인권으로서의 ‘여성인권’을 화두삼아 ‘위안부’ 문제의 국제화에 성공했지만 오히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특수성을 지웠다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대협의 운동방식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시각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이기에 학계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법하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제국의 위안부』를 역사서나 학술서보다는 논란의 중심에 선 대중서로 취급했다. 사료 해석의 타당성이 떨어지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김정인 교수(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는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을 너무 거칠게 다뤄 학문적으로는 아쉽다”고 평했다. 형사재판부 또한 『제국의 위안부』를 “학술적 성격의 대중서”로 규정했다. 게다가 ‘동지적 관계’ ‘자발적 매춘부’처럼 자극적이고 그 뜻과 맥락이 불분명한 표현들이 사용돼 논란이 이어졌다.

방법론상의 문제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증언이 달라졌다는 점을 비난하는데 국가폭력의 피해자는 기억을 다르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언론과 학계에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가 살아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과거사로 치부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제국의 위안부』에 쓰인 53곳의 표현에 대해 가처분 소송이 제기돼 그 중 34곳의 표현이 삭제됐다. 박유하 교수는 이 표현들을 모두 복자 처리한 채로 2판을 출판하고 항소를 제기했다.

사실적시와 의견표명, 그 사이에서

2017년 1월 25일,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속 35곳의 표현이 문제가 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지 1년여 만에 형사소송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35곳 중 30곳의 표현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다.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된 표현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해야 한다. 이전 판결을 참고할 때 ‘사실의 적시’란 “시간적․공간적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로서 그 내용이 증거로 증명 가능한 것”이다. 반면 “사실관계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나 가치판단”은 ‘의견의 표명’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30곳의 표현이 ‘의견의 표명’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문장구조로 살펴봤을 때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리는 서술이 대부분이었고, 추상적이고 비유적 어휘가 많아 사실관계를 따지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나머지 5곳 중 3곳의 표현에 대해서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나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 모집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나 유괴나 강제연행 같은 방식으로 위안부 모집을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표현이었다. 마지막 2곳의 표현은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로 인정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 표현이 집단을 표시했을 뿐 구성원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 A씨(27)는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명예는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라며 “어떤 표현을 들었을 때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고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리려 한다는 것을 바로 떠올릴 수 있지 않다면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이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문의 자유', 엇갈리는 법적 판단

헌법 제2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한만수 교수(동국대 국문과)는 『제국의 위안부』가 “표현의 자유 그리고 학문의 자유의 영역”이라 주장했다. 사학계 내부에서도 학술적 가치나 타당성과 무관하게 한 개인의 주관을 법정까지 끌고 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주류와 다른 시각이라도 학문의 영역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정혜경 씨는 “무죄판결이 다행스럽다”며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학문적 성과를 가지고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논의한다는 게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학자 B씨도 “피해자들이 화가 나 소송을 제기한 심정은 이해된다”면서도 “법정까지 갈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형사재판부 또한 ‘위안부 문제’가 공적 관심 사안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개진돼야 한다고 설명하며 ‘표현의 자유’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16년 1월 13일 열린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박유하 교수가 같은 사안을 두고 패소한 바 있다. 재판부가 △원고의 사회적 평가 저하 △‘위안부’의 피해자성 왜곡·부정 및 인격권 침해를 근거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저술 내용을 뒷받침할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위안부 생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사실을 일반화하거나 단정하는 등 학문의 자유 한계를 일탈”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에다 아키라 교수(일본 도쿄조케이대학 법학과)도 「‘위안부’ 문제와 학문의 폭력」(이선희 역)이라는 기고에서 “학문의 자유가 얼마나 타인을 상처 입혔는지 아는가”라며 존엄을 훼손당한 피해자들의 요구에 학문의 자유로 응수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 주장했다. 헌법에도 비슷한 맥락의 조항이 있다.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한다.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나 지위를 깎아내릴 여지가 있는 저술이라면 학술적인 목적을 띠고 있어도 무조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당하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다면 ‘학문의 자유’는 논쟁 상황에서 항상 무적의 방패로 쓰일 수는 없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학술적인 논쟁을 넘어 생각할 거리를 여럿 만들어냈다. 명예훼손에 관한 법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드러냈고,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표현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형사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제국의 위안부』는 일단 학문의 장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됐다. 정혜경 씨는 “저자(박유하 교수)가 토론이 많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학문의 장에서 토론이 충실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간 부차적인 논란에 묻혀 학술적인 논쟁은 지지부진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법정을 벗어나 공론장에 설 기회를 얻었다. 이제 이 책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질 발판이 마련됐다. 사학계 인물들은 대체로 이번 판결이 ‘위안부’ 및 과거사 논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이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