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제 와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단어를 나는 이번 기사를 취재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분명 그럴 것이었으리라 애써 자위해 봐도, 이는 나의 노동에 대한 무지였고, 무관심이었다. 노동(勞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편견이 있다. 이는 뼈저리게 각인된 레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부끄럽지만, 나에게도 한 때 노동이라는 단어를 약간 기피하던 때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위안부’ 합의, 양극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자 노력하던 때조차 노동 문제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대학에 와서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며 이전의 그릇됐던 편견을 어느 정도 해소했으나, 이 기사를 처음 쓰기로 결정된 뒤 느꼈던 약간의 고민은 아직까지도 내게 그런 편견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다양한 뉴스들을 읽어봤고, 현장의 노동자들,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 뭐 대단한 것을 깨달은 게 아니다. 단지, 노동 문제는 바로 우리 가족의 문제, 친구의 문제,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헌법에 명문화된 의무인 동시에 권리인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노동은 우리 삶의 가장 큰 부분, 아니 어쩌면 우리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노동의 문제는 단지 빨간 띠를 두르신 열의 넘치는 민주노총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문제인 것이다.

첫 취재원이었던 전국학습지노조 사무처장님은 그 방대한 조직의 요직을 책임지는 분이었지만 대단한 투사가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 고된 학습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낯선 기자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정답게 들려주시는 친절한 우리네 어머니였다.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던 금융서비스산업노조 위원장님 역시 ‘단결!’ ‘투쟁!’ 만을 외칠 것 같은 활동가보다는 처음 본 기자에게 오삼불고기를 사주며 “얼마든지 사무실에 들러라, 나중엔 소주 한 잔 같이 하자”는 말을 건네는 정겨운 우리의 아버지였다.

그랬다. 그분들은 무슨 대단한 능력이나 기질이 있어서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좀 더 사람답게, 좀 더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 노동운동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그러한 활동 덕분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일터, 결국 더 나은 내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노동문제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삶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자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말한다. 노동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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