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 폐예술품 업사이클링 브랜드 ‘얼킨’

꿩 먹고 알 먹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석이조 리사이클링이 사랑을 받았다면 이젠 ‘업사이클링’의 차례다. 리사이클링이 사용한 물건을 그대로 다시 쓰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개념인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예술가들에 의해 버려지는 습작들을 가공해 가방과 옷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으로 꿩 먹고 알 먹는 곳이 있다. 이곳 ‘얼킨’에선 예술가들이 그림도 그리고, 캔버스도 받고, 전시회도 연다. 뿐만 아니라, ‘얼킨’의 가방을 구매하는 누구나 캔버스가 버려지는 것을 막아 환경도 보호하고, 캔버스의 주인이었던 예술가도 지원할 수 있다.

버려지는 캔버스의 '변신'

업사이클링 브랜드 얼킨의 시작은 버려진 회화작품이었다. 이성동 디자이너는 “친구의 졸업 작품 전시회에 갔다가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시회가 끝나면 본래의 의미를 잃고 버려진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친구에게 작품 하나를 얻어 캔버스에 작업된 그림을 직접 가방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성동 디자이너는 이후 약 1년간 가공, 봉제 등과 같은 연구를 거듭하며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많은 작가를 만났다. 이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예술 생태계의 문제점과 자신의아이디어를 연결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 생각은 지금의 얼킨으로 이어졌다.

얼킨은 미대생들이나 작가들에 의해 버려지는 회화작품을 재활용해 가방과 다양한 의류제품을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2016년 론칭했다. ‘Ultimately We Are Kin’, 즉 ‘얽히고 설킨’이라는 의미를 지닌 얼킨은 업사이클링을 통해 작가, 예술, 대중의 연결고리가 되고자 한다. 얼킨의 론칭 당시부터 함께 해온 천자영 디자인 팀장은 “버려지는 캔버스 위 작품을 가방 및 의류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업사이클링은 얼킨이 탄생한 계기이며 얼킨 제작의 근간이자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상생의 연결고리 '얼킨'

얼킨의 시작이 어느 작가의 버려진 회화작품이었듯, 얼킨은 예술가들과 함께 성장하며 ‘재능순환’ 실현을 지향한다. 얼킨의 재능순환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업사이클링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어 작가에게 환원하는 공생 구조를 말한다. 작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작품을 얼킨에게 기부하면, 새로운 캔버스로 돌려받게 될 뿐만 아니라 기증된 작품으로 제작한 가방의 판매수익이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와 협업 등의 재투자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작가들의 보다 나은 작업 여건이 만들어진다. 얼킨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제품을 제작한다. 또한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작가에게 로열티로 지급하는 등 직접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활동과 더불어 작가에게 작품 홍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천자영 팀장은 “얼킨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다양한 시너지를 내고 이를 통해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가로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며 “버려지는 작품에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는 업사이클링, 작가에게 캔버스를 리워드 해준다는 것, 판매 수익의 일부로 전시를 개최하는 작가 후원 등 얼킨이 가진 사회적 가치와 스토리가 얼킨이 가진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얼킨은 예술과 대중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예술가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대중에게 상품으로 제공해 대중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천자영 팀장은 “소비자들이 업사이클링 가방을 접하면서 가장 흥미로워하는 점 중의 하나는 눈으로 보기만 했던 예술 작품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경험들이 얼킨이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는 예술과의 접촉이라고 생각했고, 예술을 낯설어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 친근한 예술로 다가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중들은 얼킨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업사이클링을 실천하게 되는데 이는 제품을 통해 업사이클링이 갖는 친환경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얼킨의 핵심 철학과도 일치한다.

한 발짝 더 가까이

사람들을 매료시킨 얼킨만의 매력 중 한 가지는 모든 제품이 단 ‘하나’뿐인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얼킨 사이트에 올라온 새 제품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품절이 된다. 이는 대중들도 점차 얼킨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달 지인의 추천으로 얼킨의 가방을 구매했다는 이지수 씨는 “이 디자인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얼킨만의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천자영 팀장은 “국내 소비자들도 점차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개성 있고 특별한 제품을 원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얼킨의 가방이 가진 유니크함과 프린팅 제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질감이 주는 독창성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얼킨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회화 작품이 그려진 캔버스는 소비자들이 기존에 접해오던 면이나 가죽과 같은 익숙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질감을 낯설게 느끼는 대중들이 많았다. 천자영 팀장은 “새롭고 독특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제품 사용과정에서 그림 소재에 발생하는 에이징*과 같은 변화를 낯설어하는 소비자에게 이런 부분들을 이해시키고 익숙하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앞으로도 대중들이 캔버스라는 소재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천자영 팀장은 앞으로의 얼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제는 브랜드를 넘어 예술과 대중의 소통에 보다 초점을 맞춰 작가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알리고, 대중은 예술을 낯설어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던 작품은 ‘얼킨’에 의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 옷, 모자 등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론칭 2년째인 얼킨은 작가, 예술, 대중의 경계를 지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작가와 세상 사이, 그리고 예술과 대중 사이에서 단단한 ‘연결고리’가 돼왔다. 앞으로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얽히고 설킬 얼킨의 발전과 얼킨이 만들어낼 선순환을 기대해본다.

*에이징: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퇴색 되는 것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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