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행사 | 장-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 작가 서울대 초청강연

지난 24일(수) 신양인문학술관(4동)에서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강연이 개최됐다. 이번 강연은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작가별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르 클레지오는 25일 포럼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다뤘다면, 서울대에서는 개인의 문학 수용에 집중해 삶과 문학의 연관성을 논했다.

르 클레지오는 유한한 삶이 문학을 통해 충만해질 수 있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인생은 유한하지만 문학은 영원히 남는다”며 “무(無)로 돌아가는 삶의 찰나에 문학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학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그 결과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이뤄진다.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문학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울 때 필요한 정신적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소설이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전 인류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시저』 등의 희곡이 그 예시다. 두 작품은 위선으로 가득 찬 당시 영국 상류 사회를 고발했다. 그러나 시대와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공감했다. 자신이 사는 사회의 지배층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 투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르 클레지오는 “인류가 서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의 역할을 보여준 사례”라며 호평했다.

특히 르 클레지오는 요한 보여의 『카멜레온』을 인류의 유대감 형성에 기여한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카멜레온』의 주인공은 심성이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인물로 우연한 불운이 반복되며 곤경에 빠진다. 그의 삶은 세계를 정복하거나 인류를 억압으로부터 해방했던 과거문학 속 영웅의 삶과 정반대다. 마찬가지로 카프카, 킹슬리 아미스 등 현대 사실주의 작가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삶도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처럼 문학은 삶의 다양한 형태를 제시해 현실 속 억압을 고발하고 범인류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문화적으로 생소한 작품들은 보편적인 유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르 클레지오는 “문학이 항상 보편성을 가지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학의 특수성을 긍정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재생산해내는 것은 작가의 재량에 달렸다”며 “작품의 소통 실패를 문학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그는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인 논리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강연 내내 르 클레지오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거듭 말했다. 그는 프랑스어로 진행된 강연 속에서도 이 격언만큼은 한국어로 말하며 책 속의 길을 강조했다. 문학이라는 이정표가 현실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길을 찾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서가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르 클레지오의 메시지처럼 문학작품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기대한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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