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회 | 실질적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방안 토론회

지난 19일(금) 문재인 대통령은 각 당의 원내대표들과 가진 5자 회동에서 적어도 내년 6월 지방 선거 전까지 개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개헌의 움직임이 가시화됐지만,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는 5년 단임제나 제왕적 대통령제로 대표되는 현행 권력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만 초점을 둔 채로 이뤄져 왔다. 이에 지난 24일 국회에서는 권력 구조의 개편뿐 아니라 국민의 사회권이 헌법 개정방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실질적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참여연대, 한국사회보장법학회,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등이 참여해 현행 헌법의 문제점과 사회권을 포함하는 방향의 헌법 개정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개정 헌법엔 사회권이 강화돼야=사회권이란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과 함께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기본권 중 하나로,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사회권은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를 누릴 권리를 뜻하는 사회보장권뿐만 아니라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등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포함되는 포괄적인 권리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제34조 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로 사회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노동, 보건, 가족 및 보육, 주거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사회권 규약을 인용한 경우는 총 8건으로, 사회권이라는 개념이 재판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주영 전문위원(서울대 인권센터)은 “현행 헌법에서 규정하는 사회권은 권리적 성격이 분명하지 않고 다소 추상적”이라며 국민들이 사회권이 보장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1987년에 비해 노동의 소득분배율이 하락하며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에 사회권 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주장했다. 사실상의 ‘완전고용’과 낮은 주거비로 인해 상대적으로 양극화가 덜했던 1987년과 달리, 현재 대한민국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50%를 상회하며 정규직 노동자와의 임금 수준도 두 배 가량의 격차를 보인다. 참여연대 이찬진 변호사는 “지난 30년간 형식적 평등의 기조 아래 모든 영역에서 ‘분배의 정의’가 사실상 실패했다”며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할 법적 근거를 헌법에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재단 이숙진 상임이사는 “사회적 약자 계층은 자신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법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다”며 헌법에 사회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에서 ‘노동’으로, ‘국민’에서 ‘사람’으로=이날 토론회에선 사회권 중에서도 노동권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권 보장 수준은 국제노동기준에 한참 못 미쳐 UN, ILO 등 국제기구로부터 매년 노동권 탄압에 대한 개선 권고를 받는 실정이다. 이에 노동3권이 명시돼있는 헌법 제33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찬진 변호사는 “노동3권의 목적을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고 명시하는 현행 조항은 쟁의 행위의 정당성을 지나치게 축소시킨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헌법의 규정된 용어인 ‘근로’를 ‘노동’으로, ‘근로할 권리’를 ‘일할 권리’로 바꿔 노동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87년 헌법 체제에 사용된 용어인 ‘근로’는 사람의 노동을 상품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기인했다며 헌법상 용어를 변경하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헌법에 규정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사회권은 필수적 기초로서의 인권이므로 외국인에게도 인정돼야 한다”며 “국제인권조약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그 권리의 주체로 하며 내·외국인 평등주의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현행법은 사회보장급여와 서비스 청구권, 기초생활보장, 건강권의 주체를 ‘국민 및 합법적 정주/거주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입출국이 자유롭지 않은 이주민을 배제해 권리보장 대상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개헌이 끝이 아니다=한편 개헌보다도 개정된 헌법 조항이 어떻게 사회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정책으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신영전 교수(한양대 보건대학원)는 “헌법의 조항을 개정, 신설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이러한 조항이 어떻게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자들은 국민들이 사회권을 포함하도록 개헌하는 것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헌법 개정 논의 과정을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신영전 교수는 “대부분의 토론 내용이 사회권의 학술적 성격을 설명하는데 치우쳐 있는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며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예시가 마련된 상태에서 기층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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