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나 민족이 세계 무대에서  대접 받으려면 무엇을 성취해야 할까? 물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富)는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높다고 모두 선진국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석유로 부자가 된 중동 국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세계 문화유산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라고 본다. 특히 인류 공통의 지적 자산 축적에 기여한 정도가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과거 일본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외면하고 응용 기술을 이용한 상품 개발로 많은 이익을 거두어 들일 때, '경제적 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일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면 이제 세계에서 11번째의 경제규모를 가진 한국의 경우 이에 상응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한 예로 노벨과학상을 보더라도 세계 27개국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한국은 아직도 전무하다. 그렇다고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업적이 나온 것도 아닌 듯하다. 이처럼 부진한 성적에 대해 물론 1차적으로는 연구자들이 책임져야 하겠지만, 시스템의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지식이 바로 국가경쟁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학문지원 시스템은 허점투성이이다.

 

 장기적ㆍ전문적 학문육성계획 세워야 선진국 대접 받을 것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에 학문육성 정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대학을 관할하는 교육부는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에는 관심 없고, 온통 입시와 관련된 정책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얼마 안되는 연구비를 집행하는 것도 몇몇 전문성 없는 사무관급에서 결정되고, 교육부의 고위 관리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장기적인 계획은커녕 모든 일이 임기응변적으로 처리되게 마련이다. 과학기술부 역시 단기적인 실용과제 위주로 정책을 펴다 보니, 기초연구는 소홀해지고 노벨상을 탈만한 장기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에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개편으로 정부 연구개발정책을 총괄하는 혁신본부가 생겼지만, 이 조직 또한 응용기술 위주로 짜여져 있다. 이래서야 장기 계획과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이 생명인 기초학문 육성이 제대로 이뤄지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방치해서는 우리의 앞날이 어둡다. 세계인들이 존경할 만한 학문적 업적을 내기도 어렵고,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만큼 고부가가치 기술을 만들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제는 기초학문 연구비가 대통령의 특별 배려에 의해서 제공되는 상황을 벗어나, 국가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육성정책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집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공무원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대한민국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등 소위 전문가 집단이 많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들 단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국가적 학문육성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서 서울대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인다. 아무리 폄하(貶下)해도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업적은 국내 최상급이고, 학계를 이끌고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소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균형잡힌 전문가의 시각으로 국내의 학문 발전을 위해 필요한 목소리를 내어야, 후에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오세정

자연대 교수ㆍ물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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