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문제에 대하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가히 또 하나의 국론분열이라 할 만큼 팽팽한 의견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학부모들은 고교등급제가 자신의 자녀에게 유리한지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대학들도 각자의 입지에 따라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인 교원단체들이 서로 정반대되는 의견을 발표하는 등, 이념적인 대립과 지역간, 계층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서울의 몇몇 명문 사립대학이 지난 1학기의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고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확인과정이 진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깊고 넓게 곪아온 종기가 마침내 터진 셈이다. 대학의 입학전형이 현실적으로 겪는 심각한 곤란도, 고교간의 학력차가 현격한 실태도, 고교에서 성적평가의 파행적인 운영의 실상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정부방침만  강요하며  문제점을  외면해왔다.

 

학생선발기준을 학과성적에만 두지 말고 다양화하라는 사회와 정부의 요구는 타당하다. 학과성적으로는 가늠되지 않는 여러 가지 가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으며, 이를 개발하고 함양시켜주는 것도 대학교육의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자질이냐에 따라서 이를 함양하는 데 필요한 학업능력도 여러 가지일 터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운전과 미술 창작을 배우는 데 필요한 학업능력은 서로 다르다. 대학에서 수학하는 데에도 나름대로 긴히 요청되는 학업능력이 있다. 그것을 배양하는 일이 인문계 고교의 학업내용에서 주된 비중을 차지하며, 학과성적은 그 능력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대학이 학생선발에서 학과성적의 편차를 가급적 정확하게 가늠하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 고교등급제는 내신기록이 그 편차를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일 터이다.

 

하지만 교육부총리가 지난 14일에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서 언급했듯이 성적 부풀리기 문제를 들어 고교등급제 적용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 특히, 다양한 자질과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한다는 취지의 수시모집에서 그 취지에 알맞은 전형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교과성적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은 적어도 수시모집에서는 학력 이외에 다양한 선발기준을 개발하는 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대학 자율성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고교간의 학력차가 크다는 현실을 계속 덮어둘 수는 없다. 이 문제는 대학입시정책뿐만 아니라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한다. 교육기회의 균등을 목표로 고교 평준화를 시행해왔지만, 과연 평준화가 되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아무도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이 배제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목표를 위해서 지금의 수능시험이 과연 효능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며, 7차 교육과정개편안의  장단점도  꼼꼼히 따져서 발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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