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와 차이의 논리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의 주요 흐름을 이뤘던 것은 구조주의 운동이다. 구조주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친족관계에 대한 분석에, 그리고 롤랑 바르트는 문학이론에,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에 구조주의언어학의 방법론을 적용함으로써 활짝 꽃을 피웠다. 구조주의의 기본 원리는 차이가 동일성에, 관계가 개별 항목에 선행한다는 데 있다. 곧 그 자체로는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음소 t, r, e, e가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tree’라는 새로운 단어를 형성하듯, 각각의 개체들은 하위 단위들 사이의 조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차이를 넘어서는 차연

하지만 구조주의는 차이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관계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기원을 가정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구조를 유한하고 폐쇄된 총체성으로 이해했다. 데리다는 구조주의의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여 차이의 논리를 기원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차이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기원은 더 이상 원초적인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기원 자체 역시 자신에 선행하는 어떤 하위 단위들의 결합에서 파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은 성경에서 말하듯 말씀으로서의 로고스이고, 이러한 로고스가 성립함으로써 비로소 합리적인 인식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기원을 산출하는 하위 단위들의 작용은 합리성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영역 바깥에 놓이는 역설적인 지위를 갖게 되며, 여기에서 파생된 기원은 불가피하게 이러한 역설을 억압하고 배제하게 된다. 해체란 기원이 수행하는 이러한 억압과 배제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기원에서 발견되는 차이는 구조주의와는 달리 공시적(共時的) 차원에 머물지 않고 통시적(通時的) 성격도 띠게 되며, 데리다가 ‘차연’(differance)이라는 유명한 신조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유령론

데리다는 기원의 부재를 처음에는 ‘흔적’이라고 불렀다. 곧 기원에 존재하는 것은 기원에 선행하는 어떤 것들, 하지만 우리가 식별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이후에는 이를 유령으로 표현한다. 사실 유령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며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원의 부재를 지칭하기에 매우 적절한 말이다. 더 나아가 유령은 불의에 희생된, 하지만 계속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되돌아와 불의를 바로잡을 것을 명령하는 타자들의 모습도 띠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대 데리다의 작업은 유령론, 곧 우리에게 정의를 실현할 것을 촉구하는 유령들/타자들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윤리적ㆍ정치적 책임에 관한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유령론에 따라 난민들, 이주노동자들, 인종ㆍ종교적 차별의 피해자들, 사형수들과 같은 약자들을 위한 정치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데리다의 영향

데리다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인문과학의 방법론으로 이해된 구조주의를 철학적으로 심화함으로써, 새로운 차이의 철학, 관계의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저서들은 1970년대 예일학파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문학이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회화, 사진, 건축 같은 예술분야에서도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그가 전개한 유령론과 환대의 이론은 법과 권리, 민주주의, 주권과 국경 같은 개념들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진태원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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