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령
국악과 석사졸업

“얼마나 연주할 사람이 없었으면 너한테까지 연락이 갔냐.” 친구의 시험 반주를 위해 학교에 들렀다가 대학원에 먼저 입학한 동기에게 들은 말이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 입학 전, 나에게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본래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다가 일 년을 미뤘던 내게 동기의 말은 심장이 도려내지는 느낌이 들 만큼 아팠다. 하지만 그 말 덕분에 저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후회하게 하겠노라 전의를 다지게 됐다. 그때부터 약 반년간 입시 준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연습했다. 하지만 당시 슬럼프를 겪고 있던 나는 결국 석사 입학 실기시험 당일에 위경련을 앓게 돼 링거를 맞은 후 시험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연습 때보다 훨씬 모자란 실력으로 실기시험을 마쳤다. 만족스럽지 못한 시험으로 실망한 나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라고 손을 건네듯, 내 앞으로 합격통지서가 도착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석사 입학 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단연 첫 학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선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입학 전엔 대학원의 수업 유형이 학부 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기우였다. 여러 수업을 통해 연주자로서 한층 더 성장하게 됨을 느꼈다. 한 수업에선 현대오페라를 조별로 직접 국악곡으로 편곡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석박사 통합수업이기에 혹여 모자란 모습을 보일까 봐 긴장될 때도 종종 있었지만, 현역에서 활동 중인 선배들과 함께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내게 큰 자극이 됐다. 이 수업에선 머릿속에서 맴돌던 것들이 음악이 되고, 여기에 노래와 연기가 더해져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졌다. 국악의 많은 부분에 내재해있는 음양 사상, 실록을 통해 본 왕들의 음악관 등에 대해 깊이 공부하게 된 것 또한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것들을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공부해볼 수 있었을까.

이런 수업에서의 경험들, 학교에서의 경험들은 나에게 그대로 흡수돼 또 다른 아름다운 추억과 더 풍부한 음악관을 만들어냈다. 조별 프로젝트를 넘어 개인 프로젝트에도 욕심이 생긴 나는 난생처음으로 시에 노랫말을 붙여 작곡하는 기회도 가지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면서 바라본 관객들의 표정은 앞으로 힘들 때마다 꺼내볼 소중한 기억이다. 흥미롭게 공부했던 음양 사상은 석사생활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의 주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태국 대학과의 교류연주를 진행해 해외연주라는 꿈을 이루게 된 것, “얼마나 부탁할 사람이 없으면 너한테 부탁을 하니”라고 말했던 동기에게 “너밖에 연주할 사람이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된 것, ‘한국음악의 이해’ 수업 내 단소 실기수업을 맡게 된 것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교문을 나서며 가지고 가게 될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학사, 그리고 석사에 재학하는 동안 이별이 굉장히 많았다. 몸은 가깝지만 마음이 멀어진 사람들도 있었고, 마음은 누구보다도 가깝지만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학부부터 석사까지 만 7년간 함께 한 학교와도 잠시 이별할 때가 왔다. 즐거운 일, 가치 있는 일, 많이 슬프고 좌절했던 일, 부족함으로 괴로웠던 일 등 나의 모든 것은 이 학교와 함께 했다. 어딜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하는 내 학교에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입학할 때의 간절함을 잃지 않고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꾸준히 정진하려고 한다. 나의 모든 것이 돼 준 고마운 서울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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