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호
컴퓨터공학부 학사졸업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경험들, 그리고 인연들은 우리의 등 뒤에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떠날 때가 됐기 때문에,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혹은 떠나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떠난다는 것은 한편으론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비가 온다는 학위수여식 날짜를 앞두고 글을 쓰는 나에게도 '교문을 나서는' 감상은 아쉽기도, 그리고 굉장히 기쁘기도 하다.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나의 매일이 어땠는지 추적하기가 쉽지 않지만,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은 대부분 힘들었던 시간들과 여행을 다닌 기억들이다.

학교를 꽤 오래 다녔다. 방황을 많이 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학부 생활은 대부분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고 좋은 선택보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중요한 것보다는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더 우선시했다. 즐거운 날보다는 힘들었던 날들이, 만족스러운 하루보다는 고민하다 잠드는 하루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나에게 교문이란 정말 지긋지긋하고 빨리 떠나고 싶은 존재였다. 스스로 “버티자”고 위로하면 “버틴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고, 나는 물 흐르듯 지금에 이르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나는 아직도 고민이 많지만 조금 더 괜찮고, 조금 더 즐겁다는 것이다. 학교를 빨리 떠나고 싶기보다는 오히려 학부 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쉽고, 좀 더 이어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6년 반이라는 시간 속의 무엇이 나를 변화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일화는 생각이 난다. 정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어느 날, 누군가의 SNS 담벼락에서 어떤 문구를 봤다. “모든 사람에게 20대가 그의 전성기는 아닐 것”이라는 문장이었다. 이를 본 순간, 그간 해왔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안도와 지금이 나의 최고의 시기가 아님에 대해 자각 할 수 있었고, 스스로가 조금 해방됐던 것 같다. 그동안 빠르게 달려왔으니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어디로 달릴 것인지 생각해 봐야 했다. 없는 돈으로 열심히 다닌 여행에서 느낀 한 가지가 있다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할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나만의 속도가 존재했다. 여유가 생기니 오히려 고민했던 일들이 잘 풀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지금의 나는 자신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됐다는 것이다. 수많은 잘못된 선택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똑똑하지 않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잘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정의롭고, 적어도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가끔은 똑똑하다.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동시에 즐거웠으며, 곧 나의 학부 생활 전체였다. 학교를 떠나는 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집단을 찾을 수 있고,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포기하며,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만히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채찍에 모두가 매질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시기다.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고, 더 큰 고생을 하기 위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고민을 안고 교문을 나서는 우리는 아직 전성기를 맞지 않았다. ‘그날’은 언젠가 깜짝 선물처럼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인생에 방황하는 시기가 한 번은 와야 한다면, 나는 그 시기가 지난 6년간이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를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나는 교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들어와 새로운 분야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다. 졸업하며 들었던 미련은 다시 들어옴으로써 사라지고 떠남의 즐거움만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교문을 나서는 우리들은 각자 새로운 환경으로 향한다. 새로움의 유일한 장점은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졸업하는 모두가 기대한 것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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