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컴퓨터공학부 10학번 현유지 씨

얼마 전 취업에 성공했다는 현유지 씨(컴퓨터공학부·10)에게는 면접 준비생 특유의 반듯한 인상과 차분함이 배어있었다. 그는 “내일 입사 연수를 가는데 마땅한 양복이 없어 약속 장소를 백화점으로 정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졸업 소감을 묻자 7년 동안 몸담은 학교를 졸업하니 홀가분하다며 “오히려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설렌다”는 소감을 전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UX디자인’

현유지 씨는 “뭘 해야 할지,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별생각 없이 대학에 입학해 1학년 때는 학사경고도 받으며 방황했다”며 “다양한 경험 끝에 UX디자인이라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UX(User eXperience)는 ‘서비스의 사용자가 갖는 총체적인 경험’을 뜻한다. 현 씨는 “UX디자인은 앱에서 버튼이 어느 위치에 어느 모양으로 있어야 사용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라 설명하며 “심리학, 디자인, 마케팅과 조금씩 접점이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은행가에 돌풍을 일으킨 ‘카카오뱅크’는 UX디자인의 훌륭한 예시 중 하나로 꼽힌다. 공인인증서를 쓰지 않고 카카오톡만으로 송금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최대한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현 씨는 “UX디자인을 시간이 남아야 다듬는 수준으로만 생각하기 쉽다”며 “하지만 VR, AR 등 생소한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이를 사용자에게 최대한 익숙해지도록 하는 UX디자인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 씨는 코딩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랜 기간 컴퓨터공학부로 진학하길 꿈꿔왔지만, 막상 접한 컴퓨터공학은 상상과 달랐다. 그는 “만든 코드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른 채 다른 문장을 쓰고, 작동하면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던 코딩은 코드를 덕지덕지 붙인 누더기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던 도중, ‘와플 스튜디오’라는 동아리에서 앱을 개발해 볼 기회가 생겼다. 현 씨는 “보유한 재료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레시피를 제공해주는 앱이었다”며 “단순히 앱에 기능만 몇 개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팀원의 제안으로 UX디자인에서 쓰이는 방법론대로 사용자 조사부터 시작하며 생각지도 못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 씨는 실제 자취생의 집에 방문해 그가 재료를 사고, 요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과정을 전부 관찰했고, 이는 제작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자취생들이 설거지가 귀찮아 요리할 때 최대한 적은 수의 그릇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레시피 리스트에 한그릇 음식을 많이 넣는 방향으로 앱을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UX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정보문화학 전공을 희망했지만 ‘조금만 더’라는 미련이 계속 그를 붙잡았다. “맞지 않는 옷을 빨리 벗어야 했는데 미련을 가져 복수전공이 늦어진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밝혔다.

난민의 생활상을 게임으로 말하다

‘게임의 이해’ 수업에서 기획한 ‘21days’라는 게임을 만든 경험 또한 현유지 씨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였다. 중동 난민이 유럽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21days’는 부산 인디게임 페스티벌, 지스타 등의 전시회에 출품됐으며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기도 했다. 주인공인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씨는 독일에서 난민 신분을 획득한 후 남겨진 가족이 무사히 유럽으로 올 수 있도록 여비를 21일 동안 송금해야 한다. 게임에는 난민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반영하려 노력했는데, 할랄 푸드 대신 값싼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죄책감에 시달려 정신력 수치가 하락하거나, 미숙한 언어능력을 반영해 마주치는 사람들 대사 중 일부가 ‘□’으로 처리되는 식이다. 비용을 들여 어학원을 다니면 ‘□’이 줄어들어 일터에서 실수를 줄이고 더 높은 임금의 직업을 얻을 수 있다.

게임 '21days'의 플렝 도중, 주인공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캐릭터의 대사 중 일부가 ‘□’으로 처리돼 있다.

그는 난민이라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만큼 게임이 어설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기사와 인터뷰 자료를 읽으며 사실 고증에 매달렸다. 그는 “한국은 난민 문제에 있어 제3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료 조사를 철저히 했다”며 “수업은 석 달 반인데 그 중 두 달 반을 게임 제작이 아닌 논의에 썼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게임 댓글란에선 ‘Social Justice Warrior’라는 날선 비판이 심심찮게 보인다. 현 씨는 “찾아보니 '프로불편러' 와 비슷한 뜻이었다”며 “난민에 의한 범죄로 피해받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건 게임의 내용을소수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맞닥트린다는 사실이고 그걸 들여다보는 게 게임의 목적”이라는 소신을 전했다.

게임은 오롯이 자신의 즐거움, 즉 경험을 위해서 하는 것인 만큼 UX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임을 만들 때 UX디자인의 방법론을 따라 주위 친구들을 대상으로 플레이테스트를 여러 번 진행하고 피드백을 들었다. 현 씨는 “게임 시작 시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줘야 사용자가 조작법을 쉽게 익힐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했다”며 “‘□’표시를 보고 당연히 언어 미숙을 유추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주위에서 ‘글자가 깨졌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더라”고 웃었다. 이를 토대로 ‘□’가 처음 등장할 때 ‘언어수업을 들어야겠다!’라는 메시지를 추가했다. 그는 이어 “사용자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기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그 깨달음이 최대한 사용자에게 다가가기 쉽게 만드는 UX디자인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더라”고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 불편함을 해소하는 그 날까지

일찌감치 취업에 성공한 그가 일할 회사는 일반적인 사용자가 아닌 실제 비즈니스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스템을 제작하는 BtoB(Business to Business) 회사다. 현유지 씨는 “보통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앱을 만들면 나오는 주제는 여행, 요리, 학교생활밖에 없는데, 이런 뻔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며 한 디자인 관련 영상을 소개했다. 수술 의사를 위한 기기를 만들 때 수술 중에 두려워하는 환자의 손을 잡는 의사의 특성을 고려해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그는 “BtoB의 타겟은 특정 분야의 종사자기 때문에 이같이 그 분야에 들어가야만 보이는 독특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현 씨는 인터뷰 내내 “세상엔 답답한 게 너무 많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딱딱하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학교 수업부터 인터뷰 장소로 오는 길에 보인 다이얼식으로 돌리는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현 씨에게 UX디자인이란 사용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모든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정성’이다. 그는 “손님을 맞을 때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수저를 어떻게 놓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사용자를 좀 더 생각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게 UX”라고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불편한 것들을 다 고치고 싶다”고 환하게 웃는 그가 느끼는 세상의 불편함을 그만의 방법으로 시원하게 해소하길 기대해본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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