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철학 관념의 ‘해체’ 주장하며 전통에 반기 든 철학자

▲ © 강정호 기자
데리다는? (1930~2004)

 

1930년 프랑스 출생, 26살에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1960년부터 4년간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을 통해 텍스트 뒤에 숨겨진 ‘구조’를 밝혀내려는 구조주의가 유행하던 1960년대의 철학에 반기를 든 그는 1967년 해체주의를 다룬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목소리의 현상』, 『글쓰기와 차이』 3부작을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프랑스에서는 개념의 난해함과 현학성 때문에 ‘현대판 소피스트’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영국, 미국에서 그의 사상은 철학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리다는 1981년 프라하에서 체코의 반체제 지식인들과 비밀 회합을 갖다가 체포되기도 했으며, 만델라 구명 운동, 동성애자 차별 철폐 투쟁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또 예술가들과도 어울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스만과 함께 공원을 설계했고, 비디오아티스트 게리 힐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기아, 인종주의, 핵문제 등 현실문제에 대한 저서를 잇달아 내놓은 그는 췌장암으로 건강이 악화돼 9일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데리다, 어떤 연구 했나


자크 데리다는 서양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사상계를 지배해온 ‘현전(現前)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자 한 사상가이다. ‘현전의 형이상학’에서는 모든 것을 본질과 현상의 이항대립으로 파악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에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구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데리다는 본질은 우월한 것, 현상성은 그것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것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서양전통철학의 사고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김상환 교수(철학과)는 “데리다는 이분법적ㆍ형이상학적 사고를 넘어서고자 했지만, 형이상학의 바깥은 절대적인 카오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데리다의 해체를 건축해체공학에 비유하며 “대립적인 외부의 힘으로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지탱하는 역학 구조를 바꿈으로써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며 이는 무조건 부수는 것, 파괴(destruction)가 아니라 과거의 정신적 유산을 재편성(deconstruction)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데리다는 지금까지 형이상학ㆍ언어학ㆍ미학에서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8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정치철학 분야에서 데리다의 생각은 『에코그라피-텔레비전에 관하여』, 『테러 시대의 철학』, 『불량배들-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등을 통해 표현됐다.

『에코그라피-텔레비전에 관하여』는 데리다가 직접 참여했던 텔레비전 대담을 담은 책이다. 데리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영상 매체가 촉발하는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했다. 에코그라피는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신체 내부의 상태를 고주파를 통해 진단하는 방법으로, 특히 에코(echo-)라는 접두어는 두 존재 사이의 공명(共鳴)을 통한 상호 작용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데리다는 이 책을 통해 현실의 재구성, 문자 매체와 영상 매체의 관계, 원격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치의 변화 등의 문제에 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쳤다. 예를 들어, 그는 「기억 행위들」과 「상속들에 대하여」에서 더 넓은 범위의 상속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체의 발달로 보관 가능한 자료의 양이 늘어났는데, 그 중 가치있는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해서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정체성 등도 상속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통 철학의 이분법적 시각 비판 기존 관념의 ‘재편성’ 강조

 

한편 데리다는 『불량배들-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등의 저서를 통해 ‘도래할 민주주의’의 개념을 제창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선되고 규정돼야 할 대상이므로 앞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가 오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또, 데리다는 주권의 개념이 국제관계에서 한 국가의 배타적 권리로 행사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이 주권 행사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국제기구, 국제법을 강화하고 국민국가의 주권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리다의 형이상학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에크리튀르, 차연(차이와 연기를 뜻하는 신조어. ‘다르다’와 ‘연기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differer’와 대응)등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번역한 김웅권 연구교수(한국외대)는 “‘에크리튀르’는 글쓰기, 문자, 언어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에 관한 학문이 그라마톨로지(문자학)로, 형이상학 비판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서구에서는 음성언어를 강조하고 문자언어는 음성언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언어의 음성적 의미에만 주목할 때 현전의 형이상학 속에 갇히기 쉽다”며 “데리다는 이 책에서 문자언어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리다는 형이상학의 틀을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루소, 레비스트로스 등이 어떻게 다시 그 틀에 갇혀버렸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정치ㆍ철학ㆍ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체’ 주장해

그 외에도 인물에 대한 텍스트의 해체적 읽기를 시도한 『시네퐁주』, 『에쁘롱, 니체의 문체들』 등의 저서가 있다. 해체적 텍스트 읽기는 읽는 주체의 의도를 배제하고, 텍스트가 형이상학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철저하게 봉쇄하려는 것이다.

한편, 미학과 관련한 데리다의 저서로는 『시선의 권리』, 『장님의 기억』 등이 있다. 데리다에 관련된 해설서로는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 김상환 교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 이승종 교수(연세대ㆍ철학과)가 쓴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