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클리드 기하학을 뛰어넘은 ‘공간개념’ 창시한 수학의 거장

 
▲ © 강정호 기자

 

리만

(Riemann,1826~1866)

19세기 독일 수학자. 복소수함수론과 공간개념 등 수학의 각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괴팅겐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54년 교수자격 취득 논문에서 ‘리만적분’을 정의했는데, 이를 통해 함수가 적분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했다. 또 기하학에 ‘리만공간’의 개념을 도입해, 기하학의 기초를 논하기도 했다. 델타함수의 성질에 대한 리만의 가정은 오늘날까지 연구대상이다.



리만 선생. 당신이 대학강사 자격시험 논문강연(Habilitation)을 한 것은 지금부터 150년 전 1854년 여름 괴팅겐 대학에서였습니다. 한국은 지난 여름 스무 날 동안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를 겪었는데, 그 해 당신이 강연 준비를 하며 보낸 여름의 날씨는 어떠했는지요? 당신의 강연 제목은 「기하학의 근본적인 가정에 관하여」 였습니다. 당신은 이 시험을 위해 세 개의 강연을 준비했는데 당신의 지도교수 가우스를 포함한 철학 교수진은 이 세 번째 강연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은 이 긴 강연에서 수식을 딱 하나만 썼는데 그 이유를 후세 사람들이 해석하길, 수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청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수학을 철학의 일부로서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는데 이것이 맞는 해석인지요?

 

당신은 이 강연에서 혁명적인 공간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칸트는 공간이 외부로부터 얻어진 경험적 개념이 아니고 선험적인 것이라고 말하였고, 또 공간은 삼차원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당신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헤르바르트는 공간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며 인간은 움직임을 통해서 공간개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신은 공간은 선험적이 아니며, 공간에 작용하는 힘에 근거한 거리구조가 공간을 결정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차원의 공간만 있다는 헤르바르트와 달리 당신은 고차원의 공간도 임의로 존재함을 보였습니다.

 ‘공간은 선험적이 아니며 공간에 작용하는 힘에 근거한 거리구조가 공간을 결정한다’ 혁명적인 공간개념 제시

당신은 우선 공간의 배경이 되는 다양체의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n차원 다양체란 각 점의 주변이 n차원 유클리드 공간의 한 점 주변과 일대일 대응되는 수학적 대상입니다. 이 다양체에 거리구조를 부여한 것이 당신의 공간 정의였습니다. 거리구조는 공간 속의 두 방향이 이루는 각도의 개념과 결부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거리함수의 이차도함수로서 곡률이라는 개념을 공간에 도입하였죠. 즉 어떤 두 방향으로의 거리구조를 다른 두 방향으로 미분함으로써 이 네 방향으로의 곡률텐서를 당신의 공간에서 정의한 것 말입니다. 이리하여 다양체의 거리구조는 공간에서 길이, 넓이, 부피, 각도 등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을 다룰 수 있게 하고 또 공간이 어떻게 굽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당신이 정의한 공간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공간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뉴튼과 칸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공간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유클리드 공간은 당신에 의해 그저 수없이 많은 공간중의 하나로 격하되었습니다. 굳이 유클리드 공간의 대표성을 찾아보자면 임의의 공간은 각 점에서 유클리드 공간을 접평면으로 갖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하여 유클리드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닌 우리 머리 속에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2300년 전 유클리드는 그 당시까지 알려진 기하학의 진리를 모아 『원본』 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원본의 기하학은 그 자체의 논리적 완벽성에 의해 오랜 세월 인류의 수학경전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논리의 추구는 기하학의 응용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1637년 데카르트는 공간에 좌표를 도입하여 해석기하학을 창시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기하학을 해석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석기하학의 이러한 편리함은 더디게 알려져서 18세기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은 해석기하학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뉴튼도 그의 대표적 업적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해석기하학으로 기술하는 대신 유클리드식 논리로 전개하였습니다.

 

리만 선생. 유클리드의 다섯째 공리인 평행선의 공리를 다른 네 개의 공리로 증명하려던 2000년간의 인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평행선의 공리를 부정해도 모순이 성립하지 않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마침내 1823년 볼랴이와 로바체프스키에 의해 독립적으로 창시되었습니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해석기하학에는 개의치도 않고 유클리드의 원본 식으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모든 공간은 비유클리드 공간이었죠. 그리고 당신이 다양체를 통해서 공간에 도입한 좌표는 공간을 자유롭고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해줍니다. 이로써 당신은 우리로 하여금 공간을 꿰뚫어 보게 해주었습니다.

 

당신의 강연을 듣던 가우스는 강연내용의 심오함에 충격을 받았다고 데데킨트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가우스가 이보다 27년 전 발표했던 2차원 미분기하학의 고전적인 결과를 당신은 유클리드 공간을 뛰어넘어 고차원의 다양한 공간에 확장 가능하다고 보았던 바, 당신의 이러한 대범함에 그는 놀랐고, 공간을 물리학적인 실체로 해석한 당신의 통찰력에 감명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기하학은 강연 후 60년간 기하학과 물리학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태리 친구들인 크리스토펠, 비앙키, 리치, 레비시비타의 연구 정도밖에는 말입니다. 당신의 기하학은 그 이론의 심오함에도 불구하고 무도회에서 춤을 출 상대가 없는 여자와 다름없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60년 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해 그 여자는 주역 발레리나로 화려하게 변신하였습니다.  

고차원 공간도 물리학적인 실체라고 해석, 가우스를 충격에 빠뜨려

아인슈타인은 리만 기하학 토대로 일반상대론 완성

리만 선생. 당신은 왕성하던 연구활동을 폐결핵으로 접고 마흔 살에 이승을 떠났습니다. 지금부터는 당신이 떠난 후 공간의 탐구역사에 생긴 변화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1905년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직원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전자기장과 운동에 관하여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왔던 문제를 해결하며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운동하는 물체의 전자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로렌츠와 포앙카레는 공간의 수축과 시간의 수축이라는 편법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빛의 매질인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시간의 절대적인 동시성을 과감하게 타파하여 모순 없는 물리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과학사에 한 획을 긋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운동에 따른 공간과 시간의 변화식을 주목한 민코프스키는 삼차원 공간과 일차원 시간을 융합한 사차원 시공간의 개념을 이용하면 이 변화식이 쉽게 설명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사차원 시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코프스키는 어느 관성계에서도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원리가 사차원 시공간에서 특이한 거리구조를 결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이 거리구조에 의하면 시공간에서 어떤 곡선의 길이는 영 또는 허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여 당신의 거리구조는 약간 일반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처음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의 시공간적 해석을 무시하였습니다. 필요 없이 수학적으로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그랬죠. 그러나 그는 중력에 관한 연구를 하면 할수록 시공간의 개념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이 존재하는 한 시공간은 유클리드 공간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일반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신의 공간이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죠. 그는 친구 그로스만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기하학을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는 수학의 난해한 점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봤지만 이제는 정말 수학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는군요. 이리하여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시공간의 곡률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사실 당신은 애초에 기하학의 근본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중력, 빛, 복사열, 전자기력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까? 

 

리만 선생. 당신의 공간이론은 탄생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류의 숙원이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아울러 공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인류에게 제기하였습니다. 당신의 기하학을 토대로 세워진 일반상대성 이론은 수성의 근일점 이동, 스펙트럼의 적색편이, 중력에 의한 공간의 휨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공간의 이상한 현상들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위성항법장치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써서 시간을 수정하지 않으면 단 이 분만에 허용오차한도를 초과하게 된답니다. 이렇게 당신의 기하학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 깊숙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꿈꾸었던 중력장과 전자기장의 통합적인 이해는 현대인도 아직 못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 닫히고 단순연결인 삼차원 공간은 구면과 같은 모양이라는, 100년간 미해결이었던 포앙카레의 예상을 최근 페렐만이 풀었다고 주장하여

지금 한창 사람들이 확인작업 중입니다. 그는 이 삼차원 공간의 곡률을 연속적 흐름에 의해 상수곡률로 바꿈으로써 구면임을 증명하였답니다. 그러나 두 개의 이차원 구면의 데카르트 곱으로 이루어진 사차원 공간은 양수의 곡률을 가질 수 없다는 홉프의 예상은 아직 그 해결이 요원한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매우 얇은 10차원 공간이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나이는 무려 141억 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별은 130억 광년이나 떨어져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광막한 우주 공간과 덧없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하나의 가냘프게 떨리는 존재입니다. 리만 선생. 이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당신의 시공은 우리의 시공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연구에 전념했던 당신의 떨림을 우리도 느끼고 있습니다. 허블망원경으로 오색영롱한 수많은 은하들을 보며 이 공허한 우주 공간의 한 시공에 던져진 우리 인간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가을이 왔습니다. 공간의 탐구역사에 새로운 장이 추가될 때 다시 소식 전할 것을 기약하며 이만 줄입니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최재경 교수

(자연대ㆍ수리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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