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교수
약학과

실험실과 냉동고로 둘러싸인 복도를 지나자 김규원 교수(약학과)의 연구실이 보였다. 밖에서 간간이 들리는 차가운 기계음과 달리 연구실 내부는 차분했고 책들로 가득 차있었다. 어릴 적부터 과학자라는 꿈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김 교수는 “집이 약국을 해서 자연스레 약학에 관심이 갔다”며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약으로 산을 쌓는다는 그의 호 ‘약산’이 보여주듯, 김 교수의 인생은 언제나 약학과 함께였다.

김 교수는 하버드의대 다나파버암연구센터에서 학업을 마치고 부산대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회상했다. 당시 부산대는 암 연구에 필요한 시설이나 도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대안책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계란을 떠올려 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돼야 암세포가 퍼지기 때문에 혈관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을 항암제로 쓰려는 개념이 막 나올 때였다”며 “부화기 안의 달걀에 이러한 물질을 집어넣으면 혈관의 생성이 억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김 교수의 혈관 연구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특히 암 발생전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관 생성에 필요한 단백질 HIF-1알파가 산소농도에 따라 조절되는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호암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자기계발을 할 겸 북도 쳐보고 태극권도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공부가 천직이라는 걸 느꼈다는 김 교수는 “연구실이나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도 전세계적으로 축적된 연구결과를 활용해 퇴임 후에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꾸준히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 교수는 후학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질병 연구는 하나의 원인에만 집중하는 표적치료가 대다수였다”며 앞으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질환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연구의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정년퇴임 기념집에 『주역』의 ‘이견대인’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이견대인이란 젊어서 좋은 스승을 만나거나 나이가 들어 좋은 제자를 만나면 본인이 크게 발전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제자 하나하나가 모두 대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30년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면 누구보다도 ‘이견대인’함으로써, 내 개인적으로는 매우 왜소하고 작았지만 여러 좋은 제자들 덕분에 크게 비상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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