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교수
자유전공학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장과 책상 앞으로 응접용 소파가 놓인 서경호 교수(자유전공학부)의 연구실에선 노학자의 지성이 묻어나는 듯했다. 정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서 교수는 소감이랄 게 별로 없다며 “사람들이 대개 세월이 빠르다고 불평하지만 세월은 멈춰있고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특유의 솔직한 말투로 답했다.

서 교수는 재직시절 ‘중국문학을 왜 공부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에서 중국문학연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중국과 서양 학자의 견해에 기대지 않고 한국학자의 독자적 시선에서 중국문학을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저서 『중국 문학의 발생과 그 변화의 궤적』에는 이런 그의 생각이 잘 녹아있다. 그는 “문학이란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고 독자에게 수용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이라며 “이 책을 쓰며 그 과정을 한국학자의 견해와 논리로 설명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저서는 학계로부터 중국문학연구에 한국적 시선을 도입해 새로운 담론을 일으킨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선을 중시하는 서 교수의 연구관은 그의 교육에도 반영돼 있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의 목표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는 “강의할 때 학자가 제시한 답을 설명하려하지 않는다”며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강의는 문학가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이 그에 답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서울대는 이런 서 교수의 강의를 높이 평가해 2015년 그에게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수여했다.

이어 서 교수는 매체의 발달로 문학의 성질이 변함에 따라 문학연구양상도 바뀌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1박2일>같은 예능 프로그램들도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라며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대다수에게 수용되면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에서 후학들이 기존에 문학으로 불렸던 것들에만 집착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문학만 가지고 공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문학을 문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편이자 창구로서 연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퇴임 이후 저술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요즘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금병매』다. 그는 “『금병매』는 사대기서 중에서 상대적으로 관심도 부족하고 연구도 잘 이뤄지지 않은 소설”이라며 “『금병매』를 연구하면 고대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대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학생들이 더 크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음에도 안전한 것만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며 “모험심을 키우고 좀 더 도박을 하기를 바란다”고 갈무리했다.

*사대기서(四大奇書): 명나라, 원나라 시절의 빼어나게 뛰어난 4개의 소설로서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를 일컫는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