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흔적을 따라 뉴욕으로 가다
현대미술의 흔적을 따라 뉴욕으로 가다
  • 김여경 기자
  • 승인 2017.09.03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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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현대미술의 거점 뉴욕 미술관 기행

나는 졸업을 앞둔 미술대학 학생이다. 미술을 전공하며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현대미술이 어려워서이기보다 낯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현대미술이 기존 전통 회화나 전통 조각의 틀을 깨고 매우 넓고 다양한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현대미술은 감상자들이 어디까지를 미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를 쉽게 구분해내는 것조차 힘들게 한다. 관람객이 현대미술관을 돌아다니다 작품을 작품이 아닌 것으로 착각해 경호원에게 제재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낯설고도 흥미로운 현대미술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 나는 현대미술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뉴욕에 방문했다. 뉴욕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현대미술의 거점이다. 그곳 뉴욕에서 현대미술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소호에서 뉴욕으로

19세기부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1950년대 이후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뉴욕에 그 명성을 내주게 된다. 60년대엔 뉴욕을 중심으로 추상표현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났으며 길거리의 교통 표지판, 통조림 깡통, 광고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물건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팝아트도 이때 탄생했다. 이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뉴욕의 화랑가인 소호, 윌리엄스버그, 첼시, 업타운을 다녀왔다.
뉴욕 맨해튼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소호는 과거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돼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맨해튼이 국제 무역도시로 성장하면서 공장보다는 호텔과 무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쪽으로 사람들이 이주하자 공장의 임대료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50년대부터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기존의 공장을 작업실로 이용했다. 이곳에서 크고 작은 상업화랑들이 연이어 자리잡으며 80년대까지 소호는 예술의 거리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소호가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그 명성과 함께 임대료가 올라갔고, 예술가들은 소호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소호는 레스토랑과 유명 패션브랜드들만 남은 상업지역이 돼 소수의 화랑만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는 90년대부터 소호에서 이동·형성돼 현재 개발붐이 일고 있는 지역이다. 소호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이주해 터를 잡은 이곳은 상업 갤러리들과는 달리 작가가 실제로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실에서 직접 갤러리를 운영하는 식으로 발전됐다. 뉴욕에선 팝아트와 개념미술뿐만 아니라 벽이나 그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도 생겨났는데, 윌리엄스버그에선 이런 그래피티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단순한 벽의 낙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한 장르가 돼버린 크고 작은 그래피티는 길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줌과 동시에 현대예술의 중심지로서 뉴욕의 분위기를 더 자아냈다.(사진①)

(사진①)

거리 전체가 갤러리인 첼시

첼시는 현재 뉴욕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랑가로 250여 개의 화랑이 있다. 90년대 이후 소호에서 상업화로 인한 월세 상승으로 작가들이 대거 첼시로 전시공간을 이동해, 이곳에 화랑 밀집 지역이 생겨난 것이다. 첼시에 도착하니 조용하고 오래된 옛 건물들 사이로 새롭게 지어 올린 건물이 높게 서 있었다.(사진②) 갤러리가 무수히 많아 도시 전체가 갤러리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높은 건물은 각 층마다 갤러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이곳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부터 한층 한층 계단으로 내려오며 각 층에 있는 갤러리들을 감상하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무수히 많은 첼시 갤러리 중,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은 가고시안 갤러리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들도 거쳐간 거대한 상업 갤러리다. 첼시에서 이곳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갤러리들을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Gagosian’이라고 쓰여있는 붉은 벽돌을 마주할 수 있다.(사진③) 안에 들어서면 밖에선 상상하지도 못했던 높은 천장의 전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첼시의 매력적인 점은 유명 갤러리가 아니어도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바스키아, 제프 쿤스 등의 작품도 쉽게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이가 만든 것 같은 특이한 작품과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된 창의적인 작품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쉽게 만나볼 수 있고, 신예로 떠오르는 작가들의 작품도 접할 수 있으며, 다음 갤러리에서 어떤 작품을 마주칠 지 예상할 수 없는 것 또한 첼시의 매력이다.

(사진②)
(사진③)


‘MoMA PS1’에서 보물찾기

‘뉴욕의 현대미술’을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곳은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useum of Modern Art; MoMA)다. 모마는 1880년대의 혁신적 유럽 미술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매체와 영화, 건축, 사진, 산업디자인과 같은 현대적 매체를 총망라하며, 현대 시각 문화의 시대별 최고 작품들만 선보이고 있다.
모마는 워낙 유명하지만 모마 PS1을 아는 이는 적을 것이다. 모마 PS1은 뉴욕 롱 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이다. 모마 PS1의 ‘PS’는 Public School의 약자로,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사진④) 이곳 PS1에선 모마보다 더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모마가 다양한 장르의 종합 예술 매체를 다룬다면 PS1은 현대미술 분야에 더 주목해 신예로 떠오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모마 PS1은 4층에 걸친 있는 특이한 건물구조로 구성돼 있으며 내부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따로 정해진 전시 구역이 있다기보단 곳곳에서 불쑥 작품을 마주하게 되며 제목과 설명을 읽고 나서야 보이는 작품도 있다. 내부 구조가 특이한 덕에 다음 작품을 찾아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줘 재미를 더한다.(사진⑤)
모마 PS1은 미술 전시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퍼포먼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여름마다 ‘Warm Up’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일요일엔 매주 다른 이벤트로 선데이 세션즈를 선보인다. 매년 떠오르는 건축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뽑는 PS1공모전(Young Architects Program)을 통해 프로젝트에 따라 제작되는 야외 설치작품도 중요한 볼거리다. 미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디제이의 음악에 맞춰 미술관 마당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뉴욕에서 무수히 많은 현대미술작품들과 현대미술의 싹이 된 유명한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현대미술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 뿐 이상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작가의 대변을 캔에 담은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 몸에 물감을 묻혀서 회화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 이브 클라인의 작품 같은 다소 특이한 방식의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땐 당혹스럽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면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이처럼 현대미술을 집합체를 마주하고 싶다면 현대미술이 살아 숨쉬는 이곳 뉴욕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사진④)
(사진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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