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 후속으로 HK+사업 실시

기존 연구소 사업 참여 봉쇄

10년 연구 성과 외면 지적돼

본부는 별도 지원 계획 없어

지난달 9일 한국연구재단은 인문학 진흥을 위해 2007년부터 시행해 온 인문한국 지원사업(HK사업)의 후속으로 인문한국플러스 지원사업(HK+사업)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HK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소와 연구 인력이 HK+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봉쇄해 지난 10년간 애써 키워 온 연구역량이 사라질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HK사업의 지원을 받던 서울대의 5개 연구소도 갑작스러운 인력 손실과 연구비 단절로 진행하던 연구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HK사업은 대학의 인문학 연구소 내에 전임교수 제도를 도입해 연구소 중심의 인문학 연구 체제를 확립하는 사업으로, 외면받는 인문학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다. HK문명연구사업단 단장 김주원 교수(언어학과)는 “HK사업은 학과 또는 학문 분과에 국한돼 연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방면의 깊이 있는 연구를 지원하고 나아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야심 찬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대학의 각 연구소는 2007년부터 HK사업의 지원을 받아 정년보장 심사를 받을 권리를 가진 ‘HK교수’와 일정 기간마다 재계약이 필요한 ‘HK연구교수’를 채용했다. 서울대에서도 인문학연구원, 통일평화연구원 등이 HK사업 연구소로 선정돼 HK교수 32명과 HK연구교수 24명 등이 연구에 참여해 왔다.(연구소별 교원 수는 표 참조)

출처: 교무과 및 각 연구소

문제는 지난달 초 HK사업을 집행·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이 후속 사업인 HK+사업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한국연구재단은 기존에 HK사업을 수행한 연구소는 신규 사업에 지원할 수 없으며 기존 연구 인력이나 시설을 이관해 신규 연구소를 신설하거나 기존 다른 연구소에 병합해 HK+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공고했다. 이미 기존 사업에 자립을 위한 충분한 지원을 했으며 새로운 연구 과제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인문학계에서는 새로운 HK+사업이 기존 사업에 참여해 온 연구자들을 배제하고 진행 중인 연구를 중단시켜 10년 동안 쌓아 온 연구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반발이 일고 있다. 10년이라는 기간 안에 재정적 자립이 힘든 인문학의 학문적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이유다.

서울대에서도 기존 HK사업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면서 인문학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인문학연구원 소속 박용진 HK연구교수는 “HK문명연구사업단은 2007년부터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목표로 장기 연구를 진행해 왔다”며 “연구자 절반 이상이 해임되고 연구비 지원도 없어 더는 연구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용 기간이 만료된 인문학연구원의 HK연구교수들은 학문적 열정만으로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한 출판성과물이 나올 때까지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인건비는 물론 연구 수행에 필요한 지원도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인문학연구원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연구소는 아직 연구 기간 종료까지 1~2년 정도 기간이 남았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HK사업에 대한 교육부나 대학 차원의 추가적인 지원이 없다면 수행해 온 연구과제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13명의 HK연구교수들도 순차적으로 해임된다. 이에 대해 HK평화인문학연구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임홍배 교수(독어독문학과)는 “인문학 연구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 자립을 도모하기 어렵다”며 “국가 지원이 아니면 재정적 지원을 받을 만한 곳이 전무하다”고 전했다. 현재 전국의 HK연구원들이 모인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HK+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김주원 HK문명연구사업단 단장도 “공장을 지어 놓고 일할 사람도 있는데 운영 자금을 끊어버려 휴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본부는 현재 HK연구교수에 대한 별도의 지원 대책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 교무과 김영신 담당관은 “사업 추진 당시 한국연구재단은 HK연구원의 안정적인 처우 보장을 권고했고 대학 여건에 맞춰 연구자 과반을 전임교원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부는 지금까지 HK 연구원으로 채용된 56명 중 32명을 정년 보장 심사 자격을 갖는 HK교수로 전환해 한국연구재단이 「HK사업 운영지침」에서 규정한 ‘10년 이내에 규정상 확보된 인원의 50% 이상에 대해서 임용 전환’을 완료했다. 김영신 담당관은 “추가 지원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여러 부처의 협의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대학 자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일단 HK+사업은 그대로 진행하되, 기존 사업에 대해서는 총괄평가를 거친 후 HK+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학술진흥과 최원휘 사무관은 “올해 사업에서는 이미 HK+사업에 대한 신청 공고가 났기 때문에 교육부가 지정한 8개 연구 과제에 대한 공모만 신청 받는 기본 계획을 따를 것”이라며 “총괄평가 결과와 내년도 예산안을 종합해 기존 사업에 대한 지원 여부나 규모가 정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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