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교수
동양사학과

한국에서 육식은 당연한 것으로 돼있다. 고기는 비싸고 없어서 못 먹는 것이지 일부러 안 먹는다면 이상해 보이곤 한다. 내가 약 5년 전부터 생선까지 먹는 채식을 시작한 후, 채식을 유지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고 궁핍했던 세대에게 육식은 행복의 대명사일 텐데, 안 먹겠다고 하면 얼마나 이상하겠는가. 아직은 채식주의자를 호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별로 없다. 이런 느낌은 요즘 채식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신문, 잡지, 인터넷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개 채식에 부정적인 의견들이 지지를 얻곤 한다.

확실한 것은 채식이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어떨지 몰라도 환경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건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채식이 무척 소중한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국내의 채식인구도 늘고 있지만, 외국인 가운데 채식주의자 비율이 상당하고 더욱 증가하고 있다. 통계 수치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지식인 가운데 채식주의자 비율은 더 높아 보인다. 또 유대인이나 무슬림 가운데는 자기 종교에 맞는 율법에 따라 도살되지 않은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경우, 비늘이 있는 물고기 이외의 해산물마저도 기피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이 채식을 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은 아마도 사회생활의 불편일 것 같다. 혼자 채식을 한다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다. 그래서 채식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채식을 할 뿐 남에게 폐가 될까봐 별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샤이 채식인구’들은 그저 입이 짧은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한국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양한 생활양식을 가진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가 국제적인 ‘사회생활’, 즉 학술교류에 핵심적인 인적 교류의 기본이 될 것이다. 외국인 가운데는 채식 인구가 꽤 되고, 우수한 학자들 가운데도 그런 예들이 많이 있다. 연구소와 학과, 인접 학과를 통해 초청받아 오는 저명학자들 가운데 내가 최근에 만난 사람들을 꼽아 보면 그 중 여러 형태의 채식주의자가 약 20-30%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외국인 채식주의자를 손님으로 대접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나곤 한다. 4-5년 전 어느 독일인 저명학자가 방문했을 때, ‘고기 빼고’ 비빔밥을 달라고 주문했건만 바쁜 식당에서 무신경하게 잊어먹고 고기를 넣은 비빔밥을 줬다. 이분이 너그럽게 넘어갔지만, 그에게 한국은 별로 또 오고 싶지는 않은 나라가 됐을 것이다. 고기를 뺀 비빔밥을 받고서도 이것이 온전한 채식인지 몇 번이고 물어보며 불안해 한 인도인 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7-8년 전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 총장 서너 명을 포함한 수십 명의 학술교류 사절단이 왔을 때, 우리 학교에서 나름 신경 써서(돼지고기 같은 것을 피해서) 마련한 해물 요리 오찬에 아쉽게도 대부분의 손님들이 손을 대지 않았다.

아마 학내에는 이처럼 외국 손님을 치르는 데 고민이 있었던 교수와 학생이 꽤 있었을 테지만 어떤 대책이 마련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세심한 배려는 결국 우리에게 학문적인 이득으로도 돌아온다. 전 세계의 대학들에서 채식 식당이나 푸드트럭이 운영되고 캠퍼스 근처에 채식을 할 수 있는 장소들에 대한 정보가 웹으로 제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이나 홍콩 중문대학, 도쿄대학 등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 대학들 자체에 채식주의자가 많아서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식인 커뮤니티와 교류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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