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섭 책임연구원
철학사상연구소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표현이 탁월한 통찰인지 아니면 과장된 수사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하자. 대신 이 담론의 출발점인 ‘스마트 팩토리’와 그 파급 효과를 생각해 보자.

‘스마트 팩토리’란 ‘인공지능을 이용해 상호 자율적으로 연결된 공정과정’을 의미한다. 스마트 팩토리란 결국 자동화시스템, 즉 무인공장이다. 그리고 이 스마트 팩토리의 구현은 노동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고용없는 성장’은 이미 현실이 됐고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그에 따른 실업과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명약관화하다.

그 결과 기본 소득, 그리고 이를 넘어서 기본 자본이란 개념까지 등장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기본 소득이란 재산 상황이나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개인에게 무조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 수입을 보장하겠다는 발상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에서 절도를 퇴치하기 위한 일환으로 처음 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소 기본 소득 보장이라는 발상의 원조는 토마스 모어의 절친한 벗이자 인본주의자인 바이브다.

심지어 오락이나 매춘 혹은 과도한 사치나 폭식 혹 도박과 같은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재산을 소모한 사람들에게조차 먹을 것은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굶어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바이브, 『빈민 지원 정책』, 1526)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빈곤 퇴치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면서 기본 소득 개념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콩도르세와 토마스 페인이다. 이러한 발상은 19세기 초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버트런트 러셀의 저술에도 등장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마르크스의 주장 역시 그 궤를 같이 한다.

이상적으로만 간주되던 기본 소득이라는 발상은 1970년대 중반 알래스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굴되면서 전혀 다른 국면을 맞고 현실화된다. 우여곡절 끝에 1982년 이래 알래스카에서 공식적으로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사람은 나이와 거주 햇수와 관계없이 동일한 형식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

현재 기본 소득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좌파 자유지상주의자(left-libertarian)’인 판 파레이스이다. 그렇다면 롤즈를 위시한 자유주의 평등주의자(liberal-egalitarian)들도 기본 소득에 대해 지지하는가? 판 파레이스에 따르면 롤즈가 1987년 자신과의 대화에서 기본 소득에 대해 ‘놀랍게도’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전체 부는 폭발적으로 팽창하지만 일자리 자체가 소멸하는 지금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조화시키고자 한다면 기본소득제도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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