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83동 멀티미디어동 화장실에 가본 적 있나요? 입구부터 남자화장실은 파란색 타일, 여자화장실은 분홍색 타일이 깔려 있습니다. 남녀차별은 이런 무의식적 고정관념에서 시작됩니다." 사회대 여성주의 소모임 '움틀'에서 활동중인 황두영씨(정치학과․03)는 "대학생부터 양성평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4 년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33%인 서울대에 남자 화장실은 594개지만 여자 화장실은 431개다. 301동에는 남자화장실이 34개, 여자화장실이 19개이고 38동 공학관의 경우도 각각 8개와 4개로 남자화장실 수가 거의 두 배다. 연세대 제1공대에도 남자화장실 22개, 여자화장실 8개이며 상경대에는 각각 17개와 9개다. 한국여성민우회 박노상숙 간사는 "화장실은 개수 자체보다는 접근성이 중요한 공간"이라며 "여학생이 적은 단대에 여자 화장실 수가 적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했다.

여자 화장실, 휴게실 부족 여성학 관련 강의도 확충돼야

여학생 휴게실에 대한 공방도 계속된다. 김승현씨(동국대 법학과․04)는 "학교에서 여성이 마음 놓고 쉴 공간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며 "여성의 신체적 특성상 여학생 휴게실은 각 단대마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기범씨(국민윤리교육과․03)는 "과방마저도 존폐 위기인 시점에서 여학생 휴게실이 무조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에 개설돼 있는 여성학 관련 강의는 '여성사', '여성과 사회' 등 6개이며, 동국대에 개설된 교양강좌는 '여성학' 하나다. 여성학 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이화여대의 경우도 여성학과가 대학원에만  설치돼 있고 '여성과 정책', '여성과 매스컴'등 교양과목이 8개 정도 개설돼 있을 뿐이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이재인 연구원은 "전국 대학에서 여성학 관련 수업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남녀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여성학 수업은 현대 시민 교육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양성평등 위한 노력 이어져 대학에서 양성평등 익혀야

한편 대학 내에 총여학생회(총여)나, 여성자치단위 등의 활동은 최근 주춤하고 있다. 조선대에는 1987년부터 총여가 있었으나 2004년에는 학생회가 꾸려지지 못했다. 1985년 총여가 생긴 전남대의 경우도 작년에는 꾸려지지 못했다가 올해 간신히 다시 생겼다.

  한편 정주연씨(동아대 화학공학부․04)는 "남학생이 많은 공대의 분위기는 스킨십에 대한 문제의식을 무뎌지게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1997년부터 반성폭력 학칙 제정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서울대도 1998년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했다. 그러나 옥민영씨(인류학과․00)는 "당시는 과반 학생회도 활발했고 양성평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 반성폭력 학칙이 잘 지켜졌으나 요즘은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반성폭력 학칙조차 정해지지 않은 곳도 있다. 조선대 총학생회 투쟁국장 오상원씨(원자력과․00)는 "아직은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아 반성폭력 학칙도 정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양성평등위원회 등의 자치 단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대학의 양성평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한양대 총여학생회장 이양희석씨(사학과․99)는 "학우들이 '페미니즘은 어렵고 까다롭다'는 편견을 가진 것 같다"며 "이런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화요까페', '화장실신문' 등 다양한 접근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지씨(고려대 영어교육과․04)는 "매학기 개최되는 '여성해방제'를 통해 양성평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울산대 공대학생회 여학부장 전아현씨(생명화학공학부․03)는 "매년 9월 학내에서 개최되는 월경 페스티발은 대안 생리대 등 생소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며 "즐거운 축제 분위기에서 남학생들도 편안하게 양성평등의 개념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조은 교수(동국대․사회학과)는 "대학이 사회에 비해서 깨어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양성평등의 '실현'은 요원하다"며 "남녀차별이 고질적으로 뿌리박혀 있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잘못된 개념을 의식적으로 교정하고 제대로 된 양성평등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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