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기사단장 죽이기 1•2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문학동네
565쪽/16,300원

장르문학이란 대개 장르소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순수문학의 대척점에 놓인 상업소설이나 대중소설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이번 학기 『대학신문』 책면에선 올해 신간을 발표한 대표적인 장르문학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첫 타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선정했다.

문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별함

하루키가 아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1979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이래 『1Q84』 『노르웨이의 숲(한국판 상실의 시대)』 등 무수한 걸작을 선보이며 프란츠 카프카 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년 겨울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수상후보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신간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인식은 일본인 작가의 소설에서 쉽사리 확인할 수 없던 것이다. 작품 도처에 혼재돼 있는 은유와 복선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독자를 미로에 빠뜨린다. 작품이 지닌 독특함은 독자들을 흥미로운 소설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과거를 쫓으며 마주하게 되는 트라우마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는 12살에 여동생을 잃은 적이 있고 트럭 안에 갇힌 경험으로 폐쇄공포증을 앓는다. 전문 초상화가로 살아가던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한 뒤 일본화의 거장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는 다락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도모히코의 그림을 발견하고 일련의 사건을 겪는다. 이 그림은 도모히코의 트라우마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도모히코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연인과 아끼던 동생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상처를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주인공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과 도모히코의 그림이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도모히코가 있는 요양원으로 찾아간다. 주인공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가운데 두 인물의 트라우마가 극복되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아마다 도모히코가 겪었던 전쟁 트라우마에 대한 서술은 흥미롭다. 작가는 일본군이 일반인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중국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난징대학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말한다. 더불어 도모히코가 오스트리아 빈 유학시절에 겪었던 나치의 폭압적인 정치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나치 독일과 일본이 긴밀한 협력관계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일본이 세계대전의 공범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1권의 마지막에 사무엘 빌렌베르크의 『트레블링카의 반란』*이 인용된 것은 하루키가 전쟁에 대한 반성적 시각에서 작품을 썼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전쟁이 많은 이에게 후유증을 남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상처를 덮은 공상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곳곳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돼 있다. 소설 속에 이데아(Idea)와 메타포(Metaphor)가 현실화돼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통 이데아란 플라톤이 제시한 개념으로 현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실재를 가리킨다. 하지만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나타나는 이데아는 플라톤의 개념과 달리 실체로 드러난다. 이 이데아는 몸을 현실화하고 장소를 출입하는 데 제약이 있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이데아는 <기사단장 죽이기> 속 기사단장의 모습을 빌려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은유를 뜻하는 메타포도 현실화돼 <기사단장 죽이기> 속 ‘긴 얼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메타포는 ‘메타포의 길’을 통해 현상과 실재를 연결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그는 메타포의 길로 들어가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조언을 남긴다. 주인공은 그 길을 통과하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게 된다.

가려져 있는 내막의 불가침성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독특한 문학적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더불어 일본인 인물들은 클래식과 재즈 음악만 듣고 집에서 베이컨과 파스타를 먹는 등 서양인처럼 행동한다. 이 점으로 인해 소설 속에 지명과 인물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서술됐음에도 작품은 무국적 소설의 잔향을 남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수많은 복선과 암시, 은유와 상징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스페인이 아일랜드 앞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몰랐다는 일화, 어린 시절 방문했던 풍혈의 기억과 앨리스의 실존여부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적지 않은 복선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이에 기사단장의 모습을 한 이데아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내막을 파헤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물에 구멍 숭숭 뚫린 소쿠리를 띄우는 것처럼”이라 말한다. 작가는 난해한 장치들을 치밀하게 분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책은 완벽한 결말을 맺지 않았다. 주인공은 메타포의 길에서 얼굴 없는 남자에게 준 펭귄부적을 되찾지 못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후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주인공은 펭귄부적을 되찾기 위해 얼굴 없는 남자의 초상을 그리려 했으나 실패한다. 얼굴 없는 남자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떠났다. 얼굴 없는 남자의 초상을 그려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남은 이상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앞으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는 독자의 몫이다.

*『트레블링카의 반란』: 2차 세계대전 당시 트레블링카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마지막 생존자 사무엘 빌렌베르크가 당시를 회고하며 쓴 책이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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