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우 강사
미학과

서울대 캠퍼스에 새내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을 들인 것은 2000년이다. 유학 생활을 한 5년을 제외해도 꽤나 오랜 시간 이 캠퍼스를 오가고 있는 셈이다. 그때의 학생들과 요즘 만나게 되는 학생들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날 학생들의 모습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극심한 취업난과 무한경쟁, 그리고 ‘헬조선’으로 묘사되는 오늘날의 사회현실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대학생들, 특히 요즘 서울대 학생들이 학점과 스펙에만 집착하는 기계들이라든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철저한 관리와 사교육으로만 다져져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고등학교 4학년들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안타깝게도 이것들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매 학기의 끝에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감사의 메일이 많지만 격려의 메일을 받을 때도 있다. 어른스럽지 않게 학생들 앞에서 실수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사에게도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줄 수 있는 학생들의 배려와 여유에 나는 감탄한다. 감사메일을 보낼 때도 성적처리기간이 다 끝나고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것 역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고민을 덜어주고자 하는 배려다.

학점을 받고 나면 다시는 볼 일 없을 누군가가 아니라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대해 주고 있다는 생각, 자기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그렇게 관심과 배려로 대할 수 있는 학생들이 오늘날 이 캠퍼스에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시절 나와 내 동기들만이 캠퍼스의 주인공이었을 뿐 다른 학생들은 물론이고 나이 많은 강사들은 그저 캠퍼스의 배경이나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취급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직도 매 학기 마주치는 학생들을 ‘이번 학기 학생들’, 혹은 ‘요즘 학생들’이라는 하나의 무리로 바라볼 뿐 각각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고 배려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돌아본다.

인문대 교양수업의 특성상 내 수업에서는 조별토론 및 조별발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업시간에 밀랍인형처럼 굳어 있거나 인상을 쓰고 있던 학생들이 조별토론에서 다른 학생들과 깔깔대면서 혹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 조별발표를 위해 앞에 나와서 자기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은 갑자기 빛이 나고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 줄 알았던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의견을 물으면 놀랄 만큼 깊이 있는 생각을 말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름을 불렀더니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는 격이다.

그럴 때 한 무리의 학생들은 한 명 한 명의 인간이 되고, 강의실은 흥미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흥미로운 공간이 된다. 간지러운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강의실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고 느낀다. 다른 학생들이 발표나 토론 중에 실수를 하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같이 안타까워해주거나 웃어주는 학생들이 많을 때에도, 다른 조의 발표가 자신의 조보다 낫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감탄할 때도 나는 강의실에서 사람 냄새를 맡는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고 서울대의 위상도 조금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서울대 졸업장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지성이나 개인적 역량에 대해 무언가 말해준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서울대 졸업생들은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는 것은 아쉽다. 나의 개인적 바람은 서울대 졸업장에서 사람 냄새가 풍기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별 다른 것일까. 마주하는 이들 한 명 한 명과 그들의 생각, 그들의 삶을 진지한 관심과 존중으로 대할 수 있는 능력이 그 핵심이 아닐까. 나는 한 명의 서울대인으로서 이번 학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강의실과 캠퍼스에서 사람 냄새를 많이 맡게 되길, 이 사회의 지도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구성원들이 될 우리 서울대인들이 조금 더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