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한국연구재단은 올해로 종료될 예정이던 ‘인문한국지원사업(HK사업)’의 후속사업인 ‘인문한국플러스지원사업(HK+사업)’의 신청요강을 발표했다. 연구 인력의 정년보장 관련 규정 완화와 더불어 눈에 띄는 내용은 기존 사업단의 HK+사업 신청을 일괄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대에서도 기존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던 HK연구교수 11명이 계약 만료에 따라 해임처리됐다. 진행하던 연구도 큰 타격을 입고 사실상 연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3~40년 간의 장기 계획으로 세계적 인문학 기반을 다지겠다는 본래의 사업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이번에 해임된 인문학연구소 소속 11명의 HK연구교수들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92명의 비전임교원들은 사업 완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기습 공고로 생계를 유지할 방안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다. 교육부의 기존 사업단 재진입 불가 방침은 ‘일몰 사업’이라는 논리만으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유지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 해임된 연구 인력은 기존 연구를 진행하던 인력의 절반 이상으로, 이는 사실상 지난 10년의 인문학 연구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연구의 연속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애초 10년 전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작된 HK사업의 취지와도 정면 배치된다. 주지하다시피 인문학 연구는 직접적인 수익 창출을 그 목표로도 과정으로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인 지원 이외에 다른 장기적인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초인문학 연구 집단과 연구 역량을 구축하고도 이들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지금까지 지원한 4천400억 원의 국고연구비를 낭비하는 것일 뿐더러, 축적된 연구원들의 지식과 성과를 외면하는 처사다.

애당초 학계 및 해당 연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방향을 결정한 것도 문제지만, 교육부는 사업계획 발표 이후의 수많은 합리적 문제제기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예컨대 전국의 인문학자들이 모인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에서 지속적으로 교육부에 예산의 40% 정도를 기존 사업에 투자하는 ‘투 트랙 방안’을 제안했지만 교육부는 일관되게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전 사업보다 축소된 지원 기간과 전임교원 채용 약정 완화도 의문을 품게 한다.

이미 미국, 독일 등의 선진국은 인문학을 백년지대계로 인식하고 수 십 년 동안 기초 인문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HK+사업은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의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와 담당 기관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태도가 더해져 만들어진 비극적 합작품이다.

사회의 인문학적 역량은 탁상행정식의 자원 배분으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HK+사업의 기본계획은 과연 행정당국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교육부는 더 늦기 전에 기존 사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이제 도약기에 들어설 우리나라의 인문학 진흥을 명실상부하게 지원할 수 있는 사업방안을 인문학자들과 함께 백지부터 다시 논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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