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교수
경영학과

1983년 겨울이었다. 필자는 입학원서를 들고 경남 밀양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여기 저기 물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 입구 전철역에 내렸다. 지하철역 주위 행인들이 알려준 대로 서울대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그날따라 눈이 내려서 처음 보는 관악산이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한 달 남짓 후에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에는 동네 친지들이 모여서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얼마 후 필자는 부모님의 격려를 안고 이민가방에 짐을 싣고 서울대 기숙사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대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민주화 투쟁과 고도 성장기에 있었던 많은 노동시장 문제 때문에 학내는 거의 매주 시위와 집회로 시끄러웠다. 학기 중에도 강의가 예고도 없이 휴강이 되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대한 시험거부 운동까지 있었다.

필자 역시 그런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서울대와 맺은 인연으로 모교에 교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요즘처럼 한 학기 동안 휴강 한 번 없이 충실하게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필자의 인생에서 서울대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었다.

얼핏 들으면 어느 교수의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관악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필자가 자주 회상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필자에게는 명확한 우량자산이었던 서울대가 현재 재학생들에게도 과연 우량자산일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30년 전과는 달리 필자의 주변에서 아들이나 딸이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잔치를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미국의 명문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들이 자랑스럽게 저녁을 산다.

30년 전에는 하숙집에서 늦잠을 자다가도 학과 사무실에 들러서 여기 저기 쌓여있던 입사지원서에 이름, 주소, 연락처만 기입해서 원서를 제출해도 대다수의 대기업에 최종합격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서울대 졸업생들은 입사만 하면 대다수의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생각했다.

30년 전에는 학부를 졸업한 서울대생의 대다수가 대학원에 진학을 했지만, 현재는 불과 10~20%의 졸업생만이 대학원을 진학한다.

30년 전 대비 교수님들은 더욱 열심히 연구를 하고 휴강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지만, 서울대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30년 전과 같은 우량자산이 아닌 것 같다.

30년 전과 비교해서 가장 중요하게 달라진 것은 국내에서만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전세계가 동시에 경쟁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기업 종합상사에 취직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취업으로 평가 받던 시대는 이미 지나 버렸다. 입사 후에 주5일이 아닌 주6일씩 열정적으로 일해도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힘들게 변호사 혹은 의사가 돼도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설 자리를 위협받는 시대가 됐다. 이제 서울대는 그냥 졸업만 하면 평생 동안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우량자산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대를 우량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직도 한 가지 남아 있다. 재학생 혹은 졸업생들이 서울대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지적 및 인적 자산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다.

창업을 하면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을 적으로 만드는 대신, 인공지능을 고용하는 창업주가 되면 된다. 사람들은 흔히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세상을 바꿀 수도,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도 없다. 건물주 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창업주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건물주는 많은 경우 부모에게 물려받아야만 될 수 있지만, 건물주보다 높은 창업주는 나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창업주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선택하는 순간 바로 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미래를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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