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는 『대학신문』을 친구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둘둘 말은 『대학신문』이 교내 우체국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꽤 많은 학생들이 『대학신문』을 지인들과 나눠 본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신문 기사를 읽은 후 소감을 손편지에 써서 보내주곤 했는데 이것도 『대학신문』이 주는 큰 기쁨이었다.

지금도 11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눈앞에 『대학신문』이 기다리고 있다. 어김없이 신문을 들고 연구실에서 펼쳐보니 ‘갈 길 잃은 예비교사, 그들의 길을 밝혀줄 대책은?’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사범대가 아니라 초등교원의 임용에 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교대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빠른 속도로 읽어보았다. 기사는 사태의 실상과 발생 배경뿐 아니라 다양한 해결책들을 전문가의 의견에 근거하여 분석하며 차분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초등 예비교원의 임용대란은 상황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데 심각성이 크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비단 교원수급만이 아니라 학교교육, 교원인사, 대학입시 등 교육정책 전반에 두루 나타난다. 이는 정책 결정이 거시적으로 설계된 비전이 아니라 그때그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해 왔기 때문이다. 중립적 입장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비판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정치적 공식에 따라 정책 결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지금 교육계에는 곳곳에 누수 현상이 심각하다.

교육정책의 결정은 항상 ‘중용’의 ‘중(中)’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중’은 균형을 잘 맞춘 최선점으로 정밀한 비판적 사고를 거칠 때만 시야에 들어온다. 마음이 이미 한 곳에 치우쳐 있거나 여론, 연고, 신념에 휘둘려서는 좀처럼 ‘중’을 찾기 어렵다. 임용 절벽을 해결하는 장치로 1교실 2교사제 도입, 교과전담 교사제 확대, 전국 통합교대 네트워크 구성 등을 추진한다면 이것은 ‘중’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들은 교육생태계의 복원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더욱 맞다.

시대적 변화를 들여다본다면 예비교원의 임용 대란은 기존의 문제해결 방식으로는 풀어내기 어렵다. 이제는 교사양성 제도를 근본적으로 정비하며 새로운 집을 지을 때라고 본다. 학교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학생의 연령대 별로 어떤 교사가 필요한지, 그런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효율적인지 등등, 이러한 물음을 던지며 새로운 설계도에 대한 논의를 교육계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아 교대·사범대 통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원수요에 맞춰 정원을 줄이면 교육대학의 독자적 운영이 힘들 거라는 이유보다는, 초등-중등 연계교육 관점에서 교대·사범대 통합논의가 가속화하리라 본다. 아동의 성장이 빨라진 오늘날은 초등 6학년의 교육내용이 같은 학교 저학년보다는 중학교의 교육내용과 더욱 연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은 학교가 아니라 학년 단위로 교육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초등교원을 종합대학에서 양성하는 이유도 대학의 분리보다는 대학 내 프로그램의 분리가 시대적으로 옳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같은 대학의 울타리 내에서 초·중등 예비교원들이 서로 프로그램을 공유하며 목적형 교사양성 체제의 내적 유연성과 효율성을 함께 높여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오늘따라 『대학신문』과의 긴 추억이 더욱 생생히 느껴진다.

권오현 교수
독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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