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갈 곳 잃은 연구자의 양심, 서울대 연구윤리의 길을 묻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은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에 따라 이듬해 「서울대학교 교수윤리헌장」이 선포되고 연구윤리의 체계적인 관리·감시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2016년 서울대는 36개 국공립대학을 대상으로 시행된 연구 및 행정 분야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기록했으며 최근까지도 연구 조작, 표절 사건 등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연구윤리 연재를 통해 연구윤리의 3대 하위분야인 △연구진실성 △동물실험윤리 △연구안전의 순서로 실태를 돌아보고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을 찾아본다.

연구진실성은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학문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연구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연구결과 발표나 자료기록, 저자 표시에서의 진실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서울대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연구진실성위원회(진실위)를 설치하고 1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다. 제13대 연구처장이었던 성노현 교수(생명과학부)는 “10년 전만 해도 연구진실성 관련 제보를 받아 조사를 시행하고 사후처리를 담당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양심적인 내부 고발이 있어도 제대로 된 자체 조사가 어려웠다”며 “황우석 사건이 학교가 연구진실성 위반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용역 실험 사건, 국어국문학과 교수 논문 표절 사건 등 일련의 연구진실성 위반 사례들은 여전히 연구진실성 윤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실성위원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제도?=진실위는 사전 예방부터 제보 접수, 연구 부정행위 판정까지 연구진실성 윤리 전반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기구다. 규정상 진실위는 사전 예방과 사후 처리 모두를 담당하지만 사실상 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제보자의 제보 접수 및 각하 △예비조사 및 본조사 △연구 부정행위의 판정 및 조치 등으로 사후 처리에 무게가 쏠려있다. 이에 진실위가 사후 처리 업무에만 급급해 사전 예방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와 함께 모든 연구에 적용되는 연구진실성 윤리의 특성상 제보 범위가 넓고 이에 따라 진실위에 업무가 과중하게 지워져 개별 사안에 대한 조사가 지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노현 교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제보를 남용하거나 개인적인 갈등에 의한 보복성 제보가 의심되는 경우도 많다”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접수된 제보에 대해서는 모두 조사에 착수해야 하기 때문에 진실위가 소모적인 업무에 매몰되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연구 부정행위의 증명이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지루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성 교수는 “개인 갈등이 연관된 일부 사안의 경우 자료의 의도적·비의도적 유실이나 증언 불일치 등으로 인해 조사가 난항을 겪거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기 애매한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진실위, 생명윤리심의위원회 등 기존의 제도적 장치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연구를 사전에 검토하기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이 됐던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실험처럼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의 용역을 받아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의뢰자의 요구에 맞는 연구를 수행하기 쉽다. 성노현 교수는 “금전적 이익을 대가로 수행하는 용역 연구는 결과가 편향적일 수 있다”며 “기존의 기구들은 금전적 이득과 같은 이해관계가 얽힌 연구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를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해상충 문제가 얽힌 연구 과제를 사전 단계에 검토하는 ‘이해상충위원회’ 신설이 제안되기도 했다. 의생명연구원 임상연구윤리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옥주 교수(의과대학)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라 본부는 아직 신설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이러한 연구를 미리 검토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실성 교육 강화로 떡잎부터 푸르게=연구진실성 윤리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조기 교육을 통해 예비연구자 개개인의 윤리 의식을 함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학생들은 단과대별 이수 규정에 따라 졸업 전에 1~2개의 글쓰기 교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그러나 재학 시기 동안 단 한 번에 그치는 연구진실성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그마저도 교수자의 재량에 따라 축소되거나 ‘올바른 출처 표기법’ 수준의 교육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과학글쓰기’ 수업을 9년 넘게 강의해 온 기초교육원 박현희 교수는 “교수자가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라 학생이 받는 교육의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연구진실성 교육에서 교수자의 태도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도 연구진실성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참여율이 저조하다. 글쓰기교실의 박정희 연구교수는 “글쓰기 윤리 교육을 위해 인용법특강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자가 적다”며 “예비연구자인 학부생을 교육하기 위해 표절 예방을 비롯한 글쓰기 윤리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실성 위반은 연구자로서 윤리를 저버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손실의 비용도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진실성 훼손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다. 교원이 이러한 연구진실성 위반을 저질렀을 때는 현행 ‘교육공무원법’상 징계 시효가 3년에 그치기 때문에 과거에 저지른 연구 부정행위는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이에 우리나라도 연구진실성 위반을 엄격히 처벌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 교수는 “미국의 경우에는 오픈 북 시험이라도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면 심각한 연구진실성 위반으로 생각해 퇴학 등 중징계를 내린다”며 “우리나라도 학부생의 과제나 시험에서부터 엄격한 연구진실성 평가 기준을 요구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