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균 교수(환경보건학과)는 “위해성평가는 과학기술 의존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생활 곳곳에는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는 화학물질이 산재해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7년 8월 25일 오전, ‘케미포비아’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케모포비아’로도 불리는 이 단어는 인공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가리킨다. 화학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편리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왔다. ‘화학물질 의존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필연적으로 여러 인공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살충제 계란과 발암물질 생리대 논란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공포를 반영하듯 지난 14일(목)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생활화학물질 사태와 국민안전: 보건학의 제언” 집담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언론의 편파적 프레임 형성을 지적했다. 삼성 반도체·LCD 노동자 직업병과 가습기살균제 사태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겪었지만, 여전히 나아갈 길은 멀다.

여전히 안일한 정부, 불안 부추기는 언론

‘살충제 계란’ 논란이 계속되자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그동안 먹은 계란이 건강을 해쳤을까요?” “매일 계란을 2.6개 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등의 문구를 내세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피프로닐*이 든 계란을 꾸준히 먹어도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최경호 교수(환경보건학과)는 “위해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산업사회적 가치를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태도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성균 교수(환경보건학과)는 “독성참고치*를 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허용기준 이하로 노출된다는 것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식약처 보도자료가 단회 또는 단기간 노출에 적용되는 급성위해도 기준으로 쓰여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해도는 실제 노출량을 노출허용기준치로 나눈 값으로 1 이상이면 인체에 해롭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령구간별 평균 체중과 평균섭취량을 고려해 만성위해도를 계산하면 식약처가 허용한 최대 섭취량 구간 내에서 위해성이 1보다 컸다.

정부 조직의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국민의 건강 정보를 환경부, 보건복지부, 노동부가 중복으로 관리하는 것은 재원 낭비며 비효율”이라며 전문화와 분절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농약과 환경의 관계는 농약관리법, 식품과 인간의 관계는 식품위생법 관할인 반면 농약과 식품의 관계는 어떤 법의 소관도 아니라며 분산 관리로 인한 정책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화학물질을 사전에 등록해 관리하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2015년 제정됐지만, 제조·수입·판매되는 양에 따라 유해성 평가 항목이 달라지는 등의 허점이 있다. 최 교수는 화평법의 내용은 선진적이지만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리해야 하는 화학물질은 4만여 종이 넘는데 이를 관리하는 인력은 전문경력관 26명과 비정규직 13명에 불과하다. 유명순 교수(보건학과)는 소통에 급급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오류를 거듭한 정부 부처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식약처의 경우 식품사고 위기대응 매뉴얼 상에는 유관 부처와 국민안전처 간의 협력체계가 조직돼 있지만 실제로는 원활히 운영되지 못했다.

한편 최 교수는 “대중매체의 부정확한 정보 외에는 대중의 알 권리와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정부, 기업, 소비자 간 정보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닭고기는 안전한지, 살충제 계란을 섭취해도 되는 건지 언론사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의제가 충돌했다. 유 교수는 “근본적으로 정부 당국의 위험 소통 의제 주도력 부족이 초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식약처는 위해도를 숫자로 제시하면서 안전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식약처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 때문에 해석은 대중의 몫이 되고 혼선이 빚어졌다. 언론은 각자 다른 전문가와 학술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 교수는 생활화학물질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 언론은 가습기살균제, 메르스, 세월호 같은 사고전력과 반복되는 실수를 강조하며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인 위해성은 뒷전이었다. 유 교수는 “주요 일간지가 설정한 ‘친환경 인증’ ‘농피아’ ‘동물복지’ 등의 의제가 정책 변화를 끌어냈다”면서도 “건강에 관한 의제를 설정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에그포비아’부터 ‘케모포비아’까지 공포를 조장하는 프레임을 일찌감치 선점했다. 유 교수는 언론의 파급력과 시민사회의 리터러시를 고려할 때 ‘포비아’ 프레임을 설정하는 데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화학안전, 해답은 어디에

지금까지 위해성평가는 특정 화학물질, 특정 노출 경로 및 독성 메커니즘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신생 화학물질이거나 동물 실험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위해성평가에 한계가 있다. 최경호 교수는 “화학물질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발생한다”며 “인과성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없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건강영향 피해가 나타났다면 인구집단의 건강수준, 분자역학, 노출정보, 행동자료를 활용해 원인을 탐색하고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 환경보건 역학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성주헌 교수(보건학과)도 환경성질환에 대한 감시체계가 전무한 한국 보건 당국의 실태를 언급하며 건강영향 감시체계와 다학제·다기관이 협력한 질병관련성 역학조사가 수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질병관리본부와 국립암센터의 유전체 코호트(통계상의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를 활용해 복지부, 식약처, 환경부 등에 산재된 잠재적 자료원들을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이다. 성 교수는 “역학조사 및 역학조사 결과에 따른 관련 법-제도 논의를 중심으로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매년 기본 독성실험을 거쳐 등록된 1,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추가 과정 없이 곧바로 전용(轉用)될 수 있는 제도의 허점도 지적됐다. 김성균 교수는 사전예방주의원칙을 강조하며 “심도 있는 위해성 규명은 학계가, 사전주의적 관리는 정부가 나눠서 각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전일적 위해성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위해성평가정책위원회’라는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의 실제적인 행정부처 개편안을 제안했다. 그는 화학물질과 제품의 위해성평가를 총괄하는 ‘화학물질청’과 건강피해의 조사, 진단, 탐색, 구제, 관리대책 마련까지 도맡는 ‘환경보전청’을 신설해 신뢰 가능한 위험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유명순 교수는 정부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와 검토를 거쳐 이견 없는 사실을 전달해야 하며 “컨트롤타워나 일원화보다는 협력적 거버넌스나 공조가 효과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성균 교수는 발표 도중 미국 식품의약처(FDA)의 사례를 소개했다. FDA는 100여 명의 어린이가 설파닐아마이드 때문에 사망한 이후 모든 제약사에 시판 전 안전성 입증 의무를 부과했다. 그 결과 반세기 후 미국은 탈리도마이드 피해를 적게 입었고 FDA는 신뢰의 상징이 됐다. 행정체제 개편, 역학조사 개선 등도 좋지만 잇따른 화학물질 위해성 논란에 불안에 떠는 대중에게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신뢰를 잃고 논란을 자초했다. 언론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감은 나날이 커질 뿐이다.

*피프로닐: 곤충이나 진드기를 죽이는 살충제 중 하나. 인간이 직접 섭취하는 동물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독성참고치: 각종 환경매체를 통해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입됐을 때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노출량


사진: 박성민 기자 seongmin4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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