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자유교육 엿보기
덴마크의 자유교육 엿보기
  • 이지현 전임기자
  • 승인 2017.09.17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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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유학교를 다녀오다

멈추지 않고 팽창하는 사교육 시장과 무너지는 공교육, 가혹한 경쟁과 주입식 교육 아래 도태되는 학생들에 대한 지적은 이제 진부할 지경이다. 우리의 교육은 결국 달라질 수 없는 걸까. 그러나 지구 반대편 덴마크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성적보다는 무엇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교육,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덴마크의 자유학교였다. 자유학교는 국가가 아닌 민간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안학교와 유사하다. 그러나 대안학교가 ‘정상에서 이탈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과 달리 자유학교는 공교육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덴마크 교육을 다양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국의 교육도 달라질 수 있을까?

덴마크 교육을 다채롭게 하는 ‘자유학교’

덴마크는 기본적으로 9년의 의무교육기간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기간을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공립학교인 기초학교(folkeskolen)에서 보낸다. 이후에는 중등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의 제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덴마크 학생들에게 공립학교는 유일한 길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각자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사립학교, 즉 자유학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학교는 학생의 나이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층위로 존재한다. 기초학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프리스콜레(friskole), 중등교육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추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숙학교인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그리고 만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평생교육기관인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가 그것이다. 현재 기초교육과정에 해당하는 학생 중 약 20%가 프리스콜레를, 중등학교 진학 전에 있는 학생 중 25%가 에프터스콜레를 선택하며 폴케호이스콜레의 경우 연간 4만 명이 장기 혹은 단기 과정에 등록하고 있다.

한국의 대안교육이 공교육에 대항하는 소수의 ‘대안’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자유교육은 공교육과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립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자유학교를 선택하거나, 반대로 자유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공립학교로의 진학을 원한다고 해도 별다른 제약 없이 이전 학교에서의 학제를 이어갈 수 있다. 즉 학생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학교를 이용해 내용뿐만 아니라 기간과 시기까지 선택해 자신만의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

표1: 덴마크 학생들은 교육 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자유학교를 지탱하는 두가지 축

교육은 그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덴마크의 교육은 제도 자체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조화를 이루며 정착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덴마크 교육제도는 뿌리 깊은 소수자 민주주의 정신과 선진적인 사회보장제도 위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소수자 민주주의와 다양성=덴마크의 민주주의는 19세기 중반의 ‘풀뿌리 운동’을 거쳐 정착됐다. 당시 국가와 교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난 ‘풀뿌리’ 농민들은 스스로 주체가 돼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덴마크의 국부로 여겨지는 니콜라스 그룬트비는 기존의 교육 역시 국가의 쓸모 있는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기독교적 인격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가난한 농민을 종속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농민들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능동적인 사회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자유학교 설립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또 그룬트비는 농민들을 소수자로, 기득권 세력을 다수자로 상정해 다수자가 소수자의 가치를 존중할 뿐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수자 민주주의 정신과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은 덴마크 헌법에서 “민주주의는 소수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강조됐으며 현재까지도 덴마크 사회에 깊이 내재한 원리가 됐다.

소수자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은 자유학교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자유학교의 존재로 인해 소수자들의 가치는 보존된다. 지난 4월 열린 한국-덴마크 교육 국제 세미나에서 덴마크 자유학교연합 피터 B. 피더슨 의장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학교나 엘리트 학생들에게 맞춘 학교도 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 사람들이나 회교도 이민자 집단을 위한 학교도 있다”고 자유학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재정적 지원을 통해 뒷받침된다. 모든 학교는 학생 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만 넘으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자유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75%의 학비를 지원받는다. 이는 학교의 설립이나 입학에 대한 진입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춘다.

사진1: 니콜라이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트비는 덴마크의 신학자, 교육자, 민족운동가다.

◇사회보장제도와 경쟁 완화=덴마크의 선진적인 사회보장제도 역시 자유교육이 존속할 수 있는 중요한 근간이다. 한국의 교육이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형태로 굳어지게 된 것은 교육의 결과가 물질적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불안한 사회 안전망 위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학력과 학벌은 경제적 혹은 정치적 권력을 보장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를 기대하며 사교육 시장을 찾는다. 그러나 덴마크의 사회보장제도는 이러한 불안감을 불식시킨다. 덴마크의 민간 연구기관인 덴마크 행복연구소의 마이크 비킹 소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합된 무료 의료 시스템과 무료 교육 지원, 관대한 실업인정제도 등을 포괄하는 강력한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누구나 걱정과 스트레스를 덜게 돼 행복감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높은 세금과 높은 복지 수준은 직업으로 인한 생활 수준 격차를 완화했고, 또한 학교에서의 경쟁을 완화했다. 지난해 폴케호이스콜레에서 한 학기를 보낸 대학생 팀 씨는 “덴마크에서도 교수나 의사가 선망받는 직업이며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직업이나 학력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에서 가장 주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덴마크에서 생소한 이야기였다. 대학생 루카스 씨는 “덴마크 부모 역시 자녀에게 높은 성적을 기대한다”면서도 “이를 위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내용을 다시 배우기 위해 사립 교육기관을 찾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폴케스콜레인 세계시민학교의 소렌 교장 역시 “덴마크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 대부분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폴케스콜레 중 하나인 세계시민학교에서 교장인 소렌이 지난 학기의 학생들이 만든 캠프파이어 벤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시민학교는 전 세계의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의 교육은?

한국에서도 교육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대안학교 설립이다. 대안학교는 1995년 정부의 교육개혁안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알려진 뒤 지금까지 민간 부문의 교육 혁신 시도의 일환으로 지속돼왔다. 최근의 자유학기제나 오디세이 학교 등의 정책은 공교육계가 오히려 대안 학교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인가와 비인가를 합쳐도 대안학교는 여전히 전체 청소년의 1%조차 수용하지 못한다. 즉, 혁신적 시도들은 극히 일부의 학생들에게만 일시적인 영향력을 가질 뿐 교육 체제 전반의 변화의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이는 소수의 성공 사례가 호소력을 갖기에는 우리 사회에 학력과 학벌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교육이 사회 구조와의 조화를 기반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단순히 훌륭한 방안을 고안한다고 해서 교육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교육 혁신 역시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각자의 살길을 찾아야 하는 이들의 불안함을 이해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좋은 교육법이나 입시 제도를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학벌 사회를 타파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통해 교육 제도가 놓일 사회의 기반을 재정비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효과적으로 교육의 병폐를 해결하는 길일 것이다.

인포그래픽: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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