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학술부장

나의 오랜 친구 A는 우울증 환자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A의 손목에 난 상처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A에게 상처에 대해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매번 앞에서 머뭇거리다 돌아서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하며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어느 겨울날 새벽, A는 갑자기 찾아왔다. 혹시 붕대가 있는지 물어보는 A의 손목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한다는 나의 말에 A는 조용히 돌아섰다. 끈질기게 설득해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A는 정신과만큼은 한사코 거절했다. 약물치료도, 상담치료도 거부한 채 술을 마시는 A를 바라보며 나도 조용히 술잔을 들이켰다.

A가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라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정신병자는 정신 장애인의 낮춤말이다. 그러나 조현병,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을 통칭하는 어휘로 널리 쓰여 왔다. 정신병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정신병 환자를 의미하며, 이들을 얕잡아 보거나 낮춰 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정신병자’는 결코 좋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정신병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모 대형 포털의 백과사전 내 ‘정신 장애인’의 정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속적인 정신 분열병, 분열형 정동 장애, 반복성 우울 장애 따위로 감정 조절ㆍ사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한 제한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는 ‘장애인’에 대한 백과사전의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됐다. 정신 장애인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넘어 ‘상당한 제한’을 받고, 덧붙여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다.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 장애에 대해서도 이런 시선이니,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정신병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병자’에 달린 예시는 이런 생각을 더 확고히 굳힌다. “하는 짓이 정신병자 같다” “다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지쳐서 그런 정신병자들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등.

정신병자 같은 행동은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엇나가는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정신병자네” 하면서 웃어댄다. 몰상식한 사람, 사회부적응자, 범죄자에게도 정신병자라는 이름을 달아준다. 가벼운 일탈을 하는 이부터 범죄자까지, ‘정신병자’는 모든 사회 문제아들의 이름이다. 정신병자 같은 행동은 사회 속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는 행동인 것이다. 이에 정신 질환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고통 받고 있는, 병을 앓고 있는 것뿐인 정신병자는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일인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정신병자네요” “정신병자 같은 사람 만날까 두렵다” “살인하는 사람들 대부분 정신병자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낸다.

A는 결국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버거워한다. A는 자신은 정신병자라는 말을 꺼낼 때, “너는 정신병자가 아니야”라며 따뜻한 시선을 보낸 사람들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A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말해줬다.

“너는 정신병자야.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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