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 교수
물리천문학부

지난 8월 21일 있었던 개기일식을 계기로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영국 출신의 천문학자 세실리아 페인은 캠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학부 시절 아서 에딩턴의 강연을 듣고 천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강연에서 에딩턴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한 1919년 개기일식 관측의 성과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과학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목격한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벅찼을까. 하지만 에딩턴이 교수로 있던 캠브리지 대학에는 천문학을 향한 그녀의 꿈을 꽃피울 자리가 없었다. 당시 ‘캠브리지 박사’를 받는 특권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브리지가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때는 1948년이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 출신의 청년 찬드라세카도 1933년 캠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당시 여성이 영국 학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페인은 영국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던 사회적 틀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대서양 건너 미국의 하버드 대학 천문대장이었던 할로우 섀플리의 배려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는다. 그녀의 연구 역시 그녀의 삶처럼 선구적이었다. 별의 스펙트럼을 면밀히 분석한 그녀는 별의 주요 성분이 수소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별의 물질이 지구의 광물질과 다를 바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업적은 너무나 혁명적이어서 ‘아마도 이 발견은 거의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문구를 집어넣고 나서야 비로소 논문이 통과됐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1956년에 이르러 페인은 하버드 대학의 정교수가 된다. 이 역시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사례였다.

이 사례 하나로 세상이 합리적으로 변할 리는 없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히든 피겨스>(2017)는 1960년대 초 인간 컴퓨터로 나사(NASA)에 고용된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고 우주선 궤도 계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회의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보고서에 이름을 올릴 자격도 없었다. 심지어 흑인전용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왕복 1.6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다니는 굴욕을 감당해야만 했다. 백인 남자들의 세계였던 나사에서 그들은 단순히 컴퓨터라는 도구로 이용되기를 거부하며 불합리한 모습에 꾸준히 저항한다. 그 저항의 이면에서는 우주 개척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참여하면서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다. 잘못을 깨달은 나사의 프로젝트 책임자가 커다란 망치를 들고 ‘흑인 전용’이라는 화장실의 팻말을 부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나사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가 대학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과학적 합리성일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가기 위해 부조리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 수 있는 용기 말이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자율학습을 강요받고 심지어 체벌까지 받아가며 학력고사나 수능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문제풀이만 익힌 우리 세대는 그런 식으로 과학을 배운 적이 없다. 우리가 받은 교육처럼 학문의 도구성만 받아들이고 비판적 이성의 역할을 외면하는 것은 인류가 지난 수천년 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합리성의 유산을 허무는 일이다. 학문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합리적 가치를 창출하는 여정이다. 지적인 성실성을 희생하거나 연구부정과 인권침해로 얼룩진 성과에서는 그 누구도 의미있는 가치를 찾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세실리아 페인,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등이 보여준 용기는 노벨상보다 훨씬 더 소중한 미국 과학자 사회의 학문적 유산이자 자긍심이다. 한국의 후속 세대에게도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 발견한 가치를 선물하는 일은 이제 우리 세대의 과학자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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