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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싸고 더 빠르게, 패스트 패션이 말하지 않는 것들[특집] 패스트 패션의 명암을 짚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설명되는 ‘의식주’ 안에도 포함됐듯, 예로부터 옷은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수단이었던 옷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 효용과 의미가 확장돼 개성 표현의 수단이 됐다. SNS 뉴스피드에서 ‘가을 코디 추천’ ‘연예인이 입은 그 옷’ 등 패션 관련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옷과 패션은 사람들의 중요 관심거리가 됐다. 이에 발맞춰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패션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캐치해 상품을 기획·유통하며 큰 호응을 얻었고, 관련 사업이 국내에서 1조 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하며 그 몸집 커졌다. 이에 『대학신문』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현황을 짚고, 그 이면의 문제점을 해부해 올바른 패션 문화의 길을 모색해고자 한다.

지금은 패스트 패션 전성시대

바쁜 일상 속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탄생했듯 빠르게 기획되고 유통되는 ‘패스트 패션’이 생겨났다. 패스트 패션은 최신 유행을 따르면서 짧은 주기로 대량 생산·판매해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일컫는다.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니클로’ ‘자라’ ‘에이치엔엠’ ‘에잇세컨즈’ 등이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다. 국내 패션 시장의 경우 2001년 ‘망고’가 첫 깃발을 꽂으며 글로벌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유입이 시작됐다. 국민 내복 ‘히트텍’으로 유명한 유니클로가 2004년 한국에 상륙했고 이어 자라에이치엔엠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합리적 가격과 접근성 덕에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2010년대가 되면서 ‘미쏘’와 ‘스파오’ 등 국내 각 기업의 계열사도 패스트 패션 열풍에 합류했다. 이런 패스트 패션 열풍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 춘추전국시대로 비유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국적의 브랜드가 시장 경쟁 중이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성행한 가장 큰 이유로는 시장 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처와 저렴한 가격이 꼽힌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상품 기획부터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하며 판매 현장에서 획득한 소비자 반응과 판매 데이터 등을 활용해 소비자의 요구를 빠르게 충족시킨다. 윤리적 패션 브랜드 오르그닷 김방호 대표는 “대부분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본격적인 제품 출시 전 작은 상점인 ‘안테나 샵’을 운영한다”며 “이를 통해 예비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파악해 제품을 생산한다”고 반응 생산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빠르게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낮은 가격대 또한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만 원 지폐 2장이면 맨투맨 티셔츠 한 벌이나 운동화 한 켤레를 장만할 수 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은 생산·유통·판매를 일원화해 마진을 낮춰 형성된 것이다. 더불어 일반 소규모 옷 가게와 달리 대규모로 옷을 생산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낮은 가격대로 옷을 제공할 수 있다.

어디서든 쉽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음도 패스트 패션 시장 유행의 원인이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잘 구축해 인터넷 쇼핑이 용이하며,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에도 소비자가 곳곳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강남대로 상권엔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10개 이상 포진돼 있으며, 대형복합쇼핑몰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입점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기도 한다. 유니클로 매장은 서울에만 50여 개가 있으며, 여타 브랜드도 수도권에 각 10개 이상의 매장을 두고 있다. 또한 각 매장들은 전략적으로 공간을 연출해 소비자에게 쾌적하고 편리한 쇼핑 환경을 제공한다. 유니클로를 방문한 고객 박제후 씨는 “매장을 방문하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든다”며 “종류별로 정돈된 공간에서 원하는 옷을 한눈에 찾아볼 수 있어 혼자서도 편안히 쇼핑을 즐길 수 있다”고 유니클로를 자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화려한 표면 뒤 어두운 이면

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패션 시장의 거대 포식자가 된 배후엔 어두운 단면이 존재다. 특정 브랜드들은 시간과 비용여 자체 디자인을 제작하는 것보다 고급 브랜드의 디자인 모방하는 것을 선택해 그저 ‘빠른’ 생산에만 열을 올다. 실제 2012년 신발 브랜드 ‘찰스 필립 상하이’는 ‘’을 상대로 신발 디자인 모방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특허청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의류 디자인과 관련된 디자인 관련 심판 청구 건수가 2011년에 비해 2013년에 30% 이상 증가했다. 이유리 교수(의류학과)는 “창조적 노력을 덜 들이고 모방을 일삼는 풍토가 굳어진다면 이후 신진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욕도 저하될 것”이라며 “이는 곧 패션 시장의 잠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패스트 패션 업계는 의류 디자인 표절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실제로 혐의가 인정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 27년간 50여 차례 디자인 표절 소송에 노출됐던 패스트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은 한 번도 소송에서 패소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고가 브랜드 제품을 모방한 저렴이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디자인 보호법’에 따르면 특허청에 등록된 디자인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등록을 위해선 6개월에서 1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10단계의 심사를 거쳐야 하며, 약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 등 신진 디자이너가 감당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도 복잡하다. 또한 시즌별로 새 제품을 선보여야 하는 패션업계의 특성상 매번 디자인 등록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방호 대표는 “의류 표절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디자인 보호법이 사실상 무의미함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 특허의 모호성을 차치한다 해도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패션 시장 내 약자인 중소기업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것은 윤리적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국내 브랜드 에잇세컨의 경우 2012년 론칭 직후 한 국내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 ‘코벨’의 양말 디자인을 표절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패션 산업에서 강자가 약자의 디자인을 모방해 재생산하는 비윤리적”라고 밝혔다.

패스트 패션 업체는 저렴한 가격을 위해 저렴한 원단 혹은 재고 원단을 사용해 의류의 품질을 낮춰 소비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17년 SPA 브랜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62.2%가 ‘제품 품질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A브랜드에서 니트를 샀다는 김정인 씨는 “몇 번 세탁하면 옷의 형태가 흐트러지고 털 빠짐, 이염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쉽게 망가지는 품질 탓에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행태가 만연해졌고 이것이 환경오염 문제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하루 평균 161.5t(연간 5만 4677t)이었던 의류 폐기물이 2014년 213.9t(연간 7만 4361t)으로 32.4% 증가했다. 이 교수는 “패스트 패션과 환경오염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며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쉽게 옷을 사고 이렇게 산 질 낮은 옷은 쉽게 버려지게 돼 환경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스트 패션으로 빚어진 문제는 제3세계까지 이어진.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 형성을 위해 제3세계 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일삼는다. ‘많이’ ‘빨리’ 생산해야 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 공장에선 노동자들이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에이치엔엠의 옷을 만들던 1,100여 명의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한 달 25일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한화 5만 원 정도의 월급만을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홍콩 노동단체 기업 횡포에 맞서는 학생, 교직원 연합(SACOM)의 2014잠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유니클로 중국 하청 공장 노동자들의 매월 평균 노동 시간은 모두 300시간에 달했으며 시간 외 노동은 100시간을 초과해 중국 노동법을 어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빠름’보다 ‘바름’을 위해

일각에선 이같은 문제점을 정제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출발점으로 우선 패션 시장 내 각계각층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디자인 표절 문제에 대해 이유리 교수는 “다른 브랜드를 모방하기보단 브랜드만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고민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환경과 노동 인권을 생각하는 생산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 김방호 대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하청 공장과 계약할 때, 노동자들에게 기본적 노동 환경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부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헌 옷을 받아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수익 일부를 공장 노동자들의 교육지원금으로 쓰는 등 문제점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중”이라며 “이런 움직임이 확대돼 좀 더 많은 브랜드가 윤리적 패션 문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앞으로도 이런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패션 시장 내에서 소비자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김 대표는 “유럽이나 일본에선 건강하고 윤리적인 옷 구매 운동인 3C(Clean Clothes Campaign)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의 소비자들도 이제 윤리적 소비 운동에 관심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패스트 패션에 반대하는 ‘슬로우 패션’의 흐름도 포착됐다”며 “슬로우 패션 소비를 통해 환경오염과 노동 인권 유린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도 평소 자신이 즐겨 찾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이면을 알아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PA 브랜드: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 생산부터 소매, 유통까지 직접 맡는 패션 브랜드를 말한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문소연 기자  moonsy10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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