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지 1년이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이 이명박 정부 때에도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년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제도적인 장치는 여전히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 이를 현실화할 실효성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 예술인들은 이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의 큰 피해를 받았지만 그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비롯한 진상조사는 지난 7월 31일 제도개선위원회가 출범하기까지 근 1년간 방치됐다. 문화예술대책위는 지난 7월 성명을 통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1심 판결을 지켜보며 블랙리스트를 주도적으로 작성한 김기춘과 조윤선을 단죄할 수 있는 실정법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했다”며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형법상 새로운 죄목으로 신설하고 중형을 규정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전 검열이나 예산지원 배제의 차원을 넘어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탈한 초법적, 탈법적 국가폭력에 다름없는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지난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원론적인 반성에만 그쳐선 안 되며, 단순히 범법자들을 단죄한다는 접근도 불충분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체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문화예술계 지원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비해야 한다.

학문과 예술은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는 중요한 공공재로서 사회의 관심과 공적인 지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금을 도구로 한 학계와 문화계 탄압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공공재를 사사화(私事化)하려는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와 관련해 진상 조사를 약속하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정부·지원기관·문화계가 협약을 맺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이러한 원칙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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