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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파불립의 바람, 가을 관악을 덮어주길
  • 대학신문
  • 승인 2017.09.24 07:57
  • 수정 2017.09.2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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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파불립(不破不立). 당(唐)대의 정치가였던 한유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낡은 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작금의 관악 학생사회를 보며 뼈저리게 와 닿았다.

지난 14일(목) 전학대회가 예·결산안 심의 도중 폐회됐다. 이번 전학대회에서 반드시 논의가 이뤄졌어야 할 시흥캠퍼스 대응기조 안건을 다루지 못한 것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그 어느 안건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안의 경중을 따져봤을 때 시흥캠퍼스 담론의 공백은 학생사회에 중대한 손실임이 틀림없다.

전학대회가 다뤄야 할 안건들을 모두 다루지 못하고 폐회된 경우는 이번뿐이 아니다. 외려 모든 안건을 다루고 폐회하는 경우가 더 적을 정도다. 이를 단순히 대의원 개개인들이 무책임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어폐가 있다. 보다 더 근본적인 결함을 바르집어야 한다.

크게 회의진행의 기술적 결함과 근본 제도적 한계로 나눠보자. 진행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출석체크와 표결과정이다. 150명에 달하는 대의원 전체 명단을 출석확인과 표결을 위해 2번씩 부르는 현행 방식은 회의의 흐름을 끊어 집중을 방해하고 매우 긴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한다. 더군다나 이번 전학대회와 같이 안건이 수십 개에 달하는 경우 명단 부르는 시간이 논의 시간과 맞먹을 정도다. 중앙집행위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제는 시급한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현행 회칙에 의하면 총학생회 활동 방향 및 사업계획에서부터 예·결산, 회칙개정안 등에 이르기까지 전학대회가 다뤄야 할 안건이 매우 많다. 전학대회가 아예 열리지도 못하거나, 열린다 해도 모든 안건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2시간 회의는 기본이니 가뜩이나 여러 업무로 바쁜 대의원들이 불가피하게 빠져야 할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 것은 차라리 필연이다. 심지어 다뤄야 할 안건이 수십 개나 되니, 제대로 된 심의가 가능이나 하겠는가? 전학대회 당일 제공되는 수백 쪽에 달하는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학생회비가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연목구어의 상황에서 전학대회가 총학 집행을 견제하고 학생의 뜻을 원활히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양심이 없다.

애당초 본회의에서 심의와 토론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다. 국회의 경우만 봐도 본회의장은 형식적 절차를 위한 무대여야 한다. 거칠게 말해 전학대회보다 작지만 정치적 정당성을 위임받은 회의체에서 대다수 안건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보고, 이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전학대회가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시스템이다. 사람 몇몇이 훌륭하면 잘 운영되고, 훌륭하지 못하면 운영이 어려운 제도는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전학대회가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듯이, 관악의 정치제도는 낡았다. 불파불립의 지혜로서 이 제도적 결함을 개혁해야 할 때다.

명형준
정치학과·15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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