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블라인드 채용의 현황과 쟁점

『대학신문』이 학생회관 1층에서 진행한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티커 투표에 한 학생이 반대표를 붙이고 있다. 투표는 18일(월)부터 21일까지 학생회관 1층, 중앙도서관 터널, 제2공학관(302동) 1층에서 진행됐다. 본 투표는 표본의 무선성(randomness)을 확보하지 못해 그 표본집단이 모집단을 적절히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우나,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대략적인 여론을 구하기 위해 시행됐다. 조사 결과 반대가 찬성에 비해 약 두 배 많은 표를 얻었으며(찬성 133, 반대 291), 특히 제2공학관에서는 세 배 가량 차이가 났다(찬성 15, 반대 50).

2017년 하반기부터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면서 취업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청년 일자리 공약 중 하나로 ‘스펙 없는 이력서’를 내세웠다. 이는 이력서에 학력, 출신지, 직무 연관성이 낮은 스펙 등 인사 담당자에게 선입견을 일으킬 만한 요소를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현재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구체화됐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 소식이 알려지자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여러 서울권 대학 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으며 이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채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이 취업 시장에 불러온 변화와 이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취업 시장의 흐름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현재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이며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지원자는 공공부문 입사지원서에 학력, 출신지, 가족관계, 성별, 나이, 신체 조건, 직무 연관성이 낮은 스펙 등을 기재할 수 없게 됐다. 대신 실제 직무에 있어 지원자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직무 연관성이 높은 교육사항, 자격사항, 경험 등은 기재가 가능하다. 학점의 경우 전체 평점을 기재할 수 없으나 직무 연관성이 높은 교과목에 한해 부분적으로 교육사항란에 학점 기재가 가능하다. 전자우편주소나 동아리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학력을 드러내는 행위는 기관별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며 설령 기재된다 하더라도 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블라인드 채용 자문위원 강순희 교수(경기대 직업학과)는 “그간 수도권 명문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 선후배 네트워크가 채용 시장을 강하게 움직여왔다”며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단순히 학벌이 아니라 실력이 좋은 인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된 이유를 설명했다.

공공부문의 경우 대개 서류심사, 필기시험, 면접을 거쳐 채용이 이뤄지는데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으로 인해 서류심사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만큼 필기시험과 면접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필기시험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이나 기술 등의 내용을 국가가 체계화해 표준화시킨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에 기반을 두고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기준으로 한 필기시험을 대비하는 학원 또한 성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성춘 교수(경영학과)는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이 이미 도입된 만큼 각 기관이나 기업의 정보를 수집해 이에 맞는 사전 준비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며 “현 상황에서는 직무 관련 필기시험이나 면접에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의 흐름은 사기업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기업의 경우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기존 전형을 일부 개선하거나 관련 전형을 신설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한다고 홍보하는 대부분의 사기업의 경우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이 이뤄진다고 말하긴 어렵다. 서류전형에서만 블라인드 방식의 평가를 진행하고 면접전형에서는 입사지원서에 기재된 정보가 공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인사팀 관계자는 “지원서를 통해 학력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받지만 이는 서류나 면접 등의 전형에서 평가 위원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서류전형의 경우 자기소개서와 경력사항 등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사기업에서 학력, 학점, 스펙 등을 아예 요구하지 않는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은 일반 공채 전형이 아닌 특수한 전형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롯데 그룹의 ‘SPEC태클전형’은 서류심사 과정에서 지원자의 이름, 연락처, 직무 관련 제안서만을 요구하며 직무별 특성을 반영한 미션 수행을 거쳐 최종 선발이 이뤄진다. 현대모비스의 ‘미래전략인재전형’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나 독창적 아이디어를 가진 지원자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독창적 아이디어의 경우 신문기사나 수상 내역을 통해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처럼 사기업의 경우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이라 말할 수 있는 전형은 그 사례가 매우 적을 뿐 아니라 지원 장벽이 높아 일반 지원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공공기관 입사지원서 예시.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공공기관 입사지원서 양식은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학력, 출신지, 가족관계, 성별, 나이, 키나 몸무게 등 신체 조건을 기재하는 칸이 없으며, 지원자의 사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와의 공존을 위해 최종 학교의 소재지를 적는 칸이 존재한다. 직무 연관성이 높은 스펙의 경우 교육사항, 자격사항, 경험 혹은 경력사항에 기재가 가능하다.

블라인드 채용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다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된 현 상황에도 이에 대한 반발은 여전히 존재한다. 학내 커뮤니티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오가며 연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취업 시장의 공정성 확보를 명분으로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어떠한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정한 실력 평가가 가능해질까?=블라인드 채용에 있어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바로 학력의 기재를 금지하는 것이다. 출신지, 가족관계, 신체 조건 등은 지원자의 직무 성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를 기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만 학력의 경우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학력이 지원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음에도 이를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A씨(사회대·14)는 “우리 사회에서 고학력은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노력했다는 성실성의 상징”이라며 “이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가능성도 더욱 높다”고 말했다.

한편 학력이 더 이상 인재 선발의 효과적인 지표로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의견 또한 공존한다. 현대자동차 인사팀 관계자는 “학력이나 스펙이 우수하다고 해서 실제로 그 지원자가 조직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며 “불필요한 선입견만 품게 하고 공정한 평가를 저해하는 정보를 제외하기 위해 블라인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력이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 효율적인 지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동안 대다수의 기업들이 인재 선발의 정교한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채용 과정에서 학력을 하나의 지표로써 이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인재를 선발할 체계적이고 정교한 채용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지적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강성춘 교수는 “현재 기업들에 체계적인 채용 시스템이 전제돼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교한 채용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학력 또한 인재 선발의 지표로써 사용될 수 없을 경우 채용의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 이후 상대적으로 비중이 커진 면접 또한 효과적인 평가 절차로 작동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박원우 교수(경영학과)는 “면접 과정에서 상대방의 심리적, 사회적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대인 지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이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블라인드 채용이 현재의 우려를 뛰어넘고 실력 있는 인재를 공정하게 채용한다는 원 취지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력을 대신해 지원자의 직무 능력을 평가할 정교한 채용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강성춘 교수는 “우선 기업이 각 직무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이 명확해야 하고 이를 판별하기 위한 체계적인 채용 시스템이 만들어져야만 블라인드 채용의 타당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와의 공존은 가능한가?=블라인드 채용이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와 함께 도입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란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해당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원자를 최소 30% 채용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합격자 가운데 지역인재가 목표 비율에 미달하는 경우 추가로 모집 인원 외 지역인재를 합격시키는 제도다.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의 경우 아직 의무화되지 않았으나 현재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지역인재 채용 실적이 반영되고 있으며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향후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지원자의 출신 대학 소재지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인재 채용목표제가 블라인드 채용의 도입 취지와 모순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으며, 이는 블라인드 채용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해 강순희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채용목표제가 일정 부분 충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지역 균형 발전의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블라인드 채용과의 정책적 딜레마를 감수하고서라도 현재의 수도권 중심주의를 완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즉, 지역인재 채용목표제가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인 만큼 이 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의 비율을 점차 축소시켜나가며 블라인드 채용을 비롯한 다른 정책과의 공존을 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원우 교수는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적으로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 비율에 대해서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 의무화된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 정부의 주된 정책 기조로 민간부문에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갑작스럽게 도입된 만큼 아직 이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정교한 채용 시스템의 부재,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와의 충돌이란 문제는 블라인드 채용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논란이 되는 지점을 돌아보며 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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