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갈 곳 잃은 연구자의 양심, 서울대 연구윤리의 길을 묻다

연구안전은 연구실 사고 예방과 사후 처리, 사고 예방 및 대처 교육 이수 등 연구 과정의 안전에 대한 포괄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는 1982년에 ‘환경안전관리소’(현 환경안전원)를 발족하고 2005년 연구실 환경 변화에 발맞춰 환경 안전관리규정을 대폭 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실험실 사고는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연구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교내 연구실 사고 발생 현황 (출처: 환경안전원)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 안전=환경안전원(97동, 98동)이 조사한 교내 연구실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실험실 사고 횟수는 대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발생한 실험실 사고 11건 중 인명 피해나 100만 원 이상의 물적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9건이나 된다. 환경안전원 손병권 행정실장은 실험실 사고 횟수가 증가하고 있는 점에 대해 “사고가 급증했다기보다는 예전과 비교해 사고 발생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영향도 있다”고 전했다.

◇낡은 장비로 새로운 진리를 개척?=일부 실험실의 경우 예산 부족을 이유로 여전히 낡은 장비를 그대로 사용해 연구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예컨대 유해물질을 흡입·배출하는 장비인 흄 후드(fume hood)가 노후화돼 실험자들이 유해 증기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손병권 실장은 “교육부나 학교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고 있지만 실험실이 가장 많은 공대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는 장비를 쓰는 곳이 여럿 있다”며 “누출이 있는 후드를 교체하지 않은 채로 사용하면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자가 독성, 인화성 가스를 계속 마시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관된 화학 물질 관리 지침의 부재=지난 10년간 학내에서 발생한 연구실 사고 중 약 60%가 화학약품 및 폐수 관련 사고지만 아직 학교 차원의 통합된 화학 물질 관리 지침은 마련되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수년간 지적돼온 문제임에도 학내 천개가 넘는 실험실 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화학 물질 관리를 연구원 개인에게만 맡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과거에 사용한 화학 물질이 수십 년간 실험실에 방치되기도 한다. 손병권 실장은 “심한 경우 시약 통에 부착된 이름표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캐비닛 깊숙한 곳에 20~30년 이상 방치된 곳도 있다”며 “오래 방치될수록 까다로운 폐기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든다”고 말했다.

◇관리 한계로 이어지는 정보 파악의 어려움=환경안전원의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 학내 실험실 수는 1천 개를 훌쩍 넘는다. 실험실 수가 추정치인 이유는 실험실 수가 많고 잦은 실험실 이전으로 인해 공간 정보 파악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 실험실에 소속된 연구자들의 인적정보 관리도 만만치 않다. 실험실 특성에 따라서 요구되는 안전 교육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소속 연구원 파악이 중요하지만 자율적 신고에만 의존하는 현 상황에서 엄격한 연구자 교육이나 실험실 개별 관리는 아직 먼 나라 얘기다.

◇안전 불감증과 안전교육, 아슬아슬한 줄타기=연구자 개인의 안전 불감증 역시 문제가 있다. 안전 불감증은 결국 안전 교육을 대하는 연구자들의 안일한 태도로 이어진다. 대학원생의 경우 안전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대학원 과정 수료를 위해 꼭 필요한 논술자격시험 응시를 제한하는 제재 방안이 마련됐지만 오히려 이 제재가 사전예방이라는 안전 교육의 취지를 흐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병권 실장은 “일부 대학원생은 졸업 직전이 돼서야 논술자격시험 응시를 위해서 부랴부랴 교육을 듣기도 한다”며 “교육 미이수에 대한 제재 방안보다 교육 참여율을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정기교육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위해 구축됐던 온라인 안전 교육 시스템은 실제 이용률이 20% 미만에 그치고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현재 본부는 정보화본부의 주도로 ‘안전관리통합시스템(가칭)’ 구축을 준비 중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실험실의 자율적 신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공간 정보와 인적 정보를 결합해 학내 실험실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안전관리통합시스템은 실험실이 보유한 위험물질이나 CMR 물질* 목록을 등록하고 구매, 보관, 폐기 과정까지 관리해 그동안 부실했던 화학 물질 관리 체계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관리통합시스템은 이르면 내년 연말까지 시스템 구축을 완료해 시범 시행할 예정이다.

통합적인 안전 관리 못지않게 정기적인 안전 교육도 중요하다. 안전 교육을 통해 연구자들은 안전 관리 중요성을 상기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적절한 대처 방법을 익힐 수 있다. 환경안전원은 적절한 사고 예방 및 대처를 위해 교육 횟수를 늘리고 연구자 외에 행정 직원들로 교육 대상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또 환경안전원은 실험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초적인 상황전파나 대피요령 등을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각 실험실에 상시 비치할 수 있도록 배포할 예정이다.

기본적인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는 결국 연구자 본인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미리 방지하려면 실험실 환경 개선과 연구 장비의 정기적인 점검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전에 실험실 책임자인 교수와 연구에 직접 임하는 연구자들의 안전을 당연시하는 의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CMR 물질: 발암성, 생식세포 변이원성, 생식독성 물질로 유해성이 있으므로 취급 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프: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