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교수
심리학과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됐고 열심히 해보려고 했건만, 되는 일이 없다. 몇 과목을 철회해야하나. 아예 휴학을 해버려? 이참에 군대나 갈까. 내겐 이다지도 행운이 안 따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개다가 다들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뿐이다. 친구나 가족, 애인도 다 못 믿겠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왜 나만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 건가. 어금니를 깨물고 눈물을 삼키면서 슬픔, 억울함,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온다.

보통 분노는 부정적 감정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노의 신체적, 심리적 악영향 때문에 가능하면 억제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분노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크고 작게 느끼는 분노는 인간의 삶에 도리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감정이다. 지금 상황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신호다. 내적, 외적 요구와 위협 등을 경고해주며 문제를 직시케 해주는 감정이다. 어찌 보면 분노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 일어날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생존 매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분노가 생길 때 좌절이 아니라 도리어 더 강한 성취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욱 강렬한 목표 접근 욕구가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고급차 람보르기니의 탄생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후반에 람보르기니 회장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트렉터 사업가였다. 그 사업으로 부를 쌓은 페루치오는 알파 로메오, 재규어, 마세라티, 그리고 페라리와 같은 그 시대의 성능이 아주 좋은 차들을 소유할 수 있었다. 특히 페라리를 타고 달리는 것을 즐겼는데 이 자동차에 대한 몇 가지 불만이 있었다. 승차감, 내부 인테리어, 클러치의 질이 낮다는 것이었다. 그것만 고치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차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느 날 그는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 회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만 고치면 페라리 자동차는 아주 우수하다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 페라리 회장은 한칼에 그의 제안을 묵살해 버린다. 페라리 차를 사는 사람은 차의 성능이 아니라 비싼 차를 산다는 위신과 명예만을 생각하는 졸부들로 그런 것을 고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팔려 나가니 걱정 말라는 식이었다.

이런 태도에 람보르기니 회장은 몹시 기분이 상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무례한 발언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소유했던 1958 페라리 250GT를 자신의 방식대로 개조해버린다. 훌륭하게 개조된 차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고성능의 멋진 차를 만들어 페라리 회장에게 ‘복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복수심은 여러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로고가 비슷하다. 페라리의 로고는 ‘말’이었는데 람보르기니 로고는 ‘투우 소’다. 고용한 디자이너들은 페라리의 전직 디자이너들이었다. 공장도 이태리에 가까운 장소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람보르기니 350GT는 4개월 만에 13대가 만들어졌는데, 페라리의 판매량을 뺏어오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도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그 이후 계속 나온 람보르기니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자동차로 우뚝 서게 된다. 람보르기니 자동차의 탄생은 페라리 회장에 대한 람보르기니 회장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분노는 인간의 성취 욕구를 자극한다.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 이것은 스트레스 원이 아니고 목표를 향해 추진해 나가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나만 일이 안 풀린다고 그리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그 자체에 매몰돼 좌절하며 낙심만 할 게 아니다. 주먹을 쥐고 치밀어 오는 분노를 그대로 느끼자. 다시 일어나자. 다시 시작하자. 더 많은 성취를 위해서 이 감정, 분노를 활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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