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잠든 숲 1•2
넬레 노이하우스/박종대 옮김
북로드/392쪽/12,800원

장르문학이란 대개 장르소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순수문학의 대척점에 놓인 상업소설이나 대중소설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이번 학기 「책」면에선 올해 신간을 발표한 대표적인 장르문학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두 번째 타자로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우가 잠든 숲』을 선정했다.

내는 책마다 미스터리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며 순식간에 독자들의 호흡을 사로잡는 ‘독일 미스터리의 여왕’ 넬레 노이하우스가 신간 『여우가 잠든 숲』을 출간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결혼 후 취미로 집필을 하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자비로 출간했으며 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2015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발표한 이 책은 방대한 스케일로 독자들의 기대에 다시 한 번 보답한다.

살인으로 밝혀진 과거의 진실

루퍼츠하인 인근 숲 속의 오래된 캠핑장에서 불탄 남자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이윽고 요양원에 입원 중이던 말기 암환자 노인이 살해된다. 루퍼츠하인에서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고요한 시골마을의 적막이 깨진다. 주인공인 강력반 반장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은 범인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연쇄살인사건의 배후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친구 아르투어와 주인공의 애완여우 막시의 실종에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에 그는 동료인 피아 산더 경사와 함께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마음 깊은 곳에 묻어놨던 과거의 상처를 해소하고자 한다.

숲으로 둘러싸여 폐쇄된 작은 마을과 사건의 범인이 익숙한 이웃이라는 설정은 독자들이 작품 속 세계에 금세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저술 초반부터 유지해온 공간인 타우누스는 실제로 숲이 우거진 휴양지다. 정교한 설정과 실재하는 배경은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하며 독자가 무의식중에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생생히 따라가게 만든다. 인물들이 간간이 내뱉는 반성과 깨달음은 독자에게 참상이 벌어지게 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지적 쾌감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의 계기를 제시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참혹한 결과를 낳는 사소한 욕망들

넬레 노이하우스는 루퍼츠하인 마을의 추악함은 사람들의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밝히며 소설을 전개한다. 하지만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욕망들 모두가 거창하지는 않다.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게 만들지만 혼나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주인공의 딸 ‘소피아’, 호승심에 친구들을 모아 패거리를 만들며 주인공을 협박한 ‘페터 레싱’ 등 유년 시절의 사소한 욕망이 그 시작이다. 사소한 욕망에 따라 행동하던 아이는 더 깊은 욕망을 갈구하는 어른이 된다. 욕망은 체면과 거짓의 가면 뒤에 숨어서 한층 강하게 발현된다. 하나둘 쌓인 그릇된 욕망은 왜곡된 결과를 낳고 사람들은 이를 비밀의 상자에 감추고 외면한다. 결말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건의 실체 또한 이와 같다. 아이들의 사소한 욕망과 어른들의 심화된 욕망이 교차한 지점에 아르투어와 막시의 실종이 발생했고 이어서 루퍼츠하인 연쇄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

『여우가 잠든 숲』의 주인공 보덴슈타인 반장은 경찰 생활 30년 동안의 사건들에 회의를 느끼고 휴직을 고민한다. 그렇게 과거를 잊으려던 그에게 맡겨진 이번 사건이 유년시절 친구의 실종이란 더 오래된 과거를 직면토록 하는 계기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가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며 마주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은 자신의 과거 행동을 잊고 있다. 그들은 형사들의 추궁 앞에서 진실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감춰왔던 자신의 비밀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비밀은 마음속에 떼낼 수 없는 가시로 변해 사람들을 찌르고, 그들은 왜곡된 성격과 가식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하나둘 진실은 밝혀지고 자신의 과오가 야기한 참혹한 결과 앞에 이르러서야 인물들은 자신의 과거를 진정으로 직면하게 된다.

주인공은 발단부터 결말까지 관련 인물들의 욕망이 빚은 과거를 파헤친다. 마을의 사건은 참고인, 용의자 그리고 주변인물들 모두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기에 ‘욕망’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다.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욕망에서 비롯된 사건들의 꼬인 실타래를 발견한다. 이는 청산되지 못한 과거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작가의 ‘과거 당신의 욕망은 어떤 결과를 빚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청산됐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작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삽화: 강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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