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자 「동아일보」에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요지는 서울대 소유의 고서 『대전회통』이 1975년 관악으로 이전할 당시 무단 유출돼 현재 소장자를 상대로 반환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시행된 서울대 고서 전수조사(DB 미구축 도서 대상) 결과, 약 8만 8천여 권이 소재 불명 상태로 밝혀졌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사이 같은 한자권 국가로 유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만나 본 고서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권의 책이 매매되고 있으며 심지어 책의 이력을 알려주는 장서인 자체를 오려낸 채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국립대의 도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구매, 관리, 보존되는 귀중한 재산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일은 수십억의 세금이 줄줄이 새나간 것과 다르지 않다. 키보드 하나를 사더라도 매년 조사를 받는 마당에 수십 년간 수만 권의 책이 없어진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조속히 진상을 파악하고 TF팀을 구성해 도서관의 근본적 개혁을 포함한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서관의 기본 업무는 도서 원부와 원본의 일치 여부를 상시 확인하고 도서를 제대로 분류해 연구·강의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일은 도서를 소중히 관리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도서관의 공통된 원칙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도서를 포쇄할 때 길일을 택해 국가적인 행사로 정성을 다해 진행했다. 6.25 당시 서울대 도서관 사서였던 백린 선생은 국보급 장서 1만여 권을 한 권이라도 없어질까 일일이 새끼줄로 엮어 미군 트럭을 통해 피난시켰으며, 부산 피난 시절 혹시라도 책이 없어질까 신혼을 희생하고 반년이 넘도록 책 궤짝 위에서 선잠을 자며 지켰다. 지혜의 보고인 책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 것이며 그렇게 지켜낸 정신적 유산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정말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서 유출에 대한 제보 전화를 받은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하지만 중앙도서관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아무런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외주업체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 대학의 중심은 도서관이며 대학의 자유에는 응분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법관양성소나 규장각 또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장서인이 ‘살아있는’ 책들이 버젓이 거래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제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관련 장서를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 구입 시기와 경위,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 이제라도 스스로 반환해주신다면 후세는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할 것이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최봉경 관장
법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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